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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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은 이사야서의 저자와 저작 시기를 알려주는 정보이니 주의 깊에 보아야 합니다. 이사야서는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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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절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께 얼마나 범죄하였는지를 소상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2-3절, 11-20절, 24-31절은 하나님이 직접 이스라엘 백성들의 패역한 죄에 관해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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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부모나 주인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자들처럼 하나님께 배은망덕한 자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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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삶에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오직 종교적 예배와 의식만 행하는 신자와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혐오스러운 존재이며 하나님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것인지를 신랄하게 말씀하십니다(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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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서는 불신자를 대상으로 한 성경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자들을 향한 경고와 회개와 회복을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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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무너진 예배를 하나님은 가증히 여기십니다. 악한 행실을 중단하고, 선을 행하며 정의를 추구하고 학대받는 자를 돕고, 고아와 과부를 신원하고 변호하며 (사회적 약자를 돌봄, 교회의 역할) 가 없는 예배를 하나님을 받으시지 않습니다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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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천국 복음 선포와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일을 분리하지 않으셨고 언제나 가르침과 치유와 돌봄 사역을 함께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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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악 상과 심판의 메시지 뒤에 회복의 메시지를 함께 줍니다 (24-31). 여기 기록된 심판과 형벌의 말씀을 회개와 회복을 위한 경고이며 권면입니다.
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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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 4장에서는 ‘그날’, ‘말일’ 등을 통해 최후 심판과 구원의 날에 될 일을 미리 예언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내용들과 현재 유다와 예루살렘의 영적 상태를 고발하는 내용이 겹쳐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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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 부분은 긍정의 모습, 2:6-22 부분은 그날의 심판의 참상에 대해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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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 버림받은 이유는 우상 숭배때문입니다. 근본적인 이유죠. 특별히 그들의 전성기때 풍요로운 인생 가운데 우상 숭배가 가장 팽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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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이 풍요롭고 안정될 때 하나님을 멀리하고 세상의 것들을 마음 속에 우상으로 삼는 일이 가장 크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헝거리 정신은 신앙에도 적용됩니다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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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 숭배자이면서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 자는 여호와의 날 (주의 재림)이 공포의 날이 될 것입니다 (21).
사 3: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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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인생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할 것을 촉구합니다. 생명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다른 것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더 이상 의지하지 않은 때 하나님은 의지하는 그것을 제거하십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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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전체는 예루살렘의 멸망과 그들의 멸망의 이유, 그들의 타락상과 심판의 예고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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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심판을 당해 멸망하는 이유는 영적 간음, 즉 외도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실 모든 우상 숭배의 본질은 영적 간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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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자신의 사랑을 다른 존재에게 빼앗기길 원하지 않으시는 질투의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날 우상 숭배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며 회개해야 하는지를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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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노력과 의지로는 불가능한 걸 압니다. 우리는 늘 언제나 마음과 생각과 삶으로 우상 숭배를 하며 사는 모습을 보며 절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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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심판의 메시지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우상 숭배와 영적 간음과 죄와 불순종으로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받으신 그리스도를 의지하게 하며, 그분의 대속의 죽음만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분의 의지하는 가운데 성령께서 우리의 본성을 주를 향하게 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기도록 나아가게 합니다.
사 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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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 날’ 에 예루살렘을 청결하게 하고 회복하실 것에 대한 회복과 구원의 메시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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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은 이중 성취로 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성령의 오심으로 주의 백성들의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신 때를 가리킴과 동시에 종말에 완성될 모습이기도 합니다.
사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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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원은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이는 우리가 포도원이며 그리스도가 포도원 주인으로 비유해도 무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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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악행을 하나 하나 지적하며 “화 있을진저” 라고 하며 그들의 죄악과 그들이 받을 화의 내용을 6가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몇몇 화들은 화의 행동은 나오지만 받을 형벌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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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런 죄에 대한 심판은 바벨론에 의한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의 멸망입니다. 대적자를 통해 유다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확실하며 엄중한 가를 27-30절에 묘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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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구원받은 유다 백성이 이렇게 하나님을 버리고 악을 행하며 패역할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모습을 보면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봅니다. 이사야의 메시지를 통해 우리는 교회의 죄악된 현실을 우리의 것으로 끌어 안고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와야 하겠습니다.1
사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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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시야 왕이 죽던해는 주전 740년 경입니다. 6장은 이사야가 선지자 소명을 받는 장입니다. 대개 선지자가 소명을 받는 장면은 첫장에 기록됩니다. 시간 순서로 보면 이사야서는 6장→ [7~10장] → [1-5장] 이라는 걸 염두에 두시면 이해에 좀 더 도움이 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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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는 성전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두려워 할 때 스랍들을 통해 죄를 사함받고 하나님의 소명에 응답합니다. 그의 사명에도 불구하고 결국 유다는 황폐해 질 것이나, 하나님께서 거룩한 씨를 그루터기처럼 남겨 놓으실 것이라 말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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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0: 이사야의 사명은 말씀을 전하는 목적이 듣고 깨닫지 못하게 하고, 알지 못하게 해서 회개해서 고침 받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특이한 사명입니다. 이 말은 이사야가 아무리 전해도 오히려 유다 사람들이 메시지를 들을 수록 마음이 더 완고하고 강퍅해져 거부하게 될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했을 때, 유대인들이 그랬고, 사도들이 복음을 전했을 때도 유대인들이 그랬습니다. 결국 복음이 이방인에게 흘러가서 이방인들이 믿고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역사 속에서 전 세계의 기독교인은 거의 모두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인 게 이 말씀의 성취이죠. 로마서 11장은 이런 현상을 설명하고, 종말에 이스라엘이 이방인을 시기하여 하나님께 돌아오게 될 것을 바울은 예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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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랍들 (2): 불타는 듯한 천사적 존재 (세라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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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씨 (13): 하나님의 징계의 심판에 하나님께서 남겨 놓으신 거룩한 백성 혹은 경건한 자, 구약의 남은 자를 가리키는데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그 씨를 통해 하나님은 구원을 회복하시며 약속을 성취해 가십니다.
사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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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이야 손자 아하스 왕 때인 주전 735년경에 일어나 사건 배경, 왕하 16장에 사건이 일어 났을 때 주께서 이사야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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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이스라엘이 아람과 손을 잡고 유다를 침공하려 하지만 그들이 패망할 것을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말씀하십니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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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왕 아하스에게 위로의메시지를 전하지만 왕이 이를 믿지 못하고 징조를 구하자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신 징조의 내용 가운데 “임마누엘의 징조 (예언)” 이 들어 있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14)⇒ 의심하는 아하스에게 하나님이 함께 계시다라는 임마누엘의 예언이 확신을 주었을 것입니다. 동시에 이 말씀을 마태가 예수님의 탄생에 관해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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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의 동정녀에 의한 탄생을 예언하는 부분인데, 문제는 유다를 침공한 북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앗수르에 의해 완전히 황폐하게 될 것을 예언하는 부분에 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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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예언의 “복합 성취”, 또는 “이중 성취 (double fulfilment)” 의 성격의 예입니다. 그러나 이사야 시대 (가까운 미래) 의 성취는 부분적인 성취이며 궁극적 성취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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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장은 구절 구절마다 어떤 의미인지, 어떤 역사적 배경에 의해 이해해햐 하는지에 대한 해설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묵상 노트는 성경 공부 시간이 아니므로 그런 부분을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지만 큰 줄거리는 유다를 침공한 북이스라엘을 (에브라임으로 표현되기도 함) 하나님이 앗수르를 들어 심판하실 것이라는 예언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은 얼마 후 역사 속에서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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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만큼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반역과 불순종 가운데 타락해 있었느냐 하는 겁니다.
사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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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는 당신의 예언을 한층 더 확증시키시기 위해 이사야가 낳을 아들의 이름으로 ‘다메섹(아람)과 사마리아 (북이스라엘) 가 앗수르에게 멸망할 것이라는 뜻’ 의 이름을 짓게 하십니다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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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죄는 위기때 하나님이 아닌 앗수르 (세상의 힘) 를 의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의지하는 것에 의해 그들이 무너지게 하십니다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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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는 이사야에게 유다 백성의 길로 가지 말라고 깨우쳐 말씀하시고 (11-15),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도록 봉합하라고 하십니다. 말씀을 가리는 것이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유다의 죄악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으며 세상의 잡신, 주술 등 세상의 신비나 허구와 지혜에 의지하고 상담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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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며 공부하는 것을 등한히 하고, 말씀을 따라 살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임재를 차단하실 것입니다.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말씀이 들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면전에서 멀어지는 건 시간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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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두 집 (14)- 북이스라에로가 남유다를 가리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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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접한 자 (19): 신접한 자는 사람들을 더럽게 하고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는 존재이기에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제거해야 할 존재였습니다.
사 9:1-21,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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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의 경고의 메시지 이후 9장 1-7절까지는 한 아기가 나서 다윗 왕국을 굳게 세우고 영원히 다스릴 것에 대한 예언으로 위로의 메시지를 줍니다. 이 한 아기는 가까운 미래에 왕이 올 것을 기대하게 하지만 (예를 들면 히스기야 왕), 예수 그리스도 메시아의 탄생으로 인해 하나님 나라가 영속될 것을 예언하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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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에게 하신 언약 (삼하 7장) 을 신실하게 지키셔서 메시아가 오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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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1절, 10: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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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북이스라엘 (에브라임, 사마리아, 므낫세)의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거역하는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진노가 얼마나 큰지를 묘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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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절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어떻게 집단적으로 배교하는 지를 보여 줍니다. 결국 백성을 인도하는 지도자의 타락이 백성들을 타락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의 타락, 거짓 가르침, 부패는 많은 소위 기독교인들을 집단적으로 배교 (실질적으로 하나님을 버림) 하게 합니다. 진짜 거짓 목사, 거짓 가르침, 거짓 복음을 잘 분별하고 주의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누구의 말을 따라가야 할지 잘 선택해야 합니다. 그것이 구원과도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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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9, 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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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북이스라엘의 죄악을 심판하는 도구로 사용한 앗수르조차도 그들의 교만, 하나님을 거역, 악행을 심판하실 것에 대한 경고와 예언의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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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을 도구로 사용하시지만 악 자체를 반드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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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들이 스스로 형통하고 잘 나가는 것으보고 스스로 하나님 앞에 교만하고 계속 악을 행한다면 하나님은 그들을 반드시 멸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이런 하나님이기에 우리는 악인의 형통을 보고도 소망을 가지며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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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세상의 악으로부터 고난당할 때는 우선 우리 안에 하나님께 대한 교만과 죄악과 타락상은 없는지 돌아보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악을 들어 하나님 백성들을 징계하시는 도구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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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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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수르의 멸망 사이에 북이스라엘에서 앗수르의 심판에 남은 자가 하나님께로 돌아 올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의 광범위한 심판 가운데서도 씨를 남깁니다. 그루터기, 남은 자를 돌아오게 하셔서 그들을 통해 다시 회복을 시작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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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본문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살아남는 “남은 자들”, 혹은 “경건한 계열” 인지를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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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성경이 한편으로 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예언의 내용중에 “예수 그리스도 메시아 예언” 이 곳곳에 상당히 많이 중간 중간 나온다는 것입니다. 문맥에서 그 예언이 가지는 진의가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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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순히 당대의 역사적 정황과는 별개로 메시아를 예언한 것인지 (이럴 경우 역사적 문맥과 동떨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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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니면 당대나 가까운 미래의 예언인지,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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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중 성취나 복합 성취인지를 구별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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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때 문맥 속에서 구별해야겠지만 3)번을 기본 프레임으로 깔고 해석하면 도움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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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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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은 확실히 이새의 줄기에서 날 한 싹, 그 뿌리에서 날 한 가지→ 다윗 → 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지는 메시아 예언입니다. 성령의 기름부음받으시는 여호와의 종, 심판자로 오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그분의 존재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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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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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은 메시아의 도래로 회복될 하나님 나라입니다. 에덴의 회복된 모습입니다. 역시 이중 성취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도래할 하나님 나라의 영적인 실현과 종말에 완성될 새 하늘과 새 땅의 이상적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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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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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여호와의 날이라고도 표현하는 이 날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완성되는 날임과 함께 종말의 심판과 구원의 날을 복합적으로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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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에는 남은 백성들이 온 세계에서 주께 돌아옵니다. 복음듣고 온 세계 사람들이 예수를 주라 부르며 돌아오기를 세상 끝날까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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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미래 성취로는 바벨론 포로로 흩어진 유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돌아와 제2성전을 재건축하는 때이지만, 이건 정말 작고 초라한 회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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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 온 세계 가운데 흩어진 모든 주의 택함 받은 백성들 (창세전에) 이 주께 돌아올 때 주께서 재림하실 것입니다.
사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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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구원에 감사하며 찬송하고 또 찬송을 촉구하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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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을 향한 주의 진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누그러 뜨려졌기에 심판이 아니라 구원이 임한 것입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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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은 하나님이 행하실 일을 세상에 알리는 것입니다 (5).
사 13-28장: 열국을 심판하실 것에 대한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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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역사와 세상의 주권자이심을 알려 줍니다.
사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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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가 여호와로부터 바벨론이 받게 될 심판에 대한 경고 (1) 입니다. 이때가 약 주전 732년이고,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하는 때는 주전 586년입니다. 바벨론을 유다를 심판하는 도구로 사용하신 하나님께서는 이미 바벨론 역시 그들의 죄악으로 심판하실 것을 미리 경고하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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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유다에게도 위로를 주면서도 바벨론에게도 경고하셔서 돌이킬 기회를 주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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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을 심판하는 도구는 메대(이후 페르시아 (바사))를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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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이 멸망할 때를 ‘여호와의 날’ 이라고 묘사하는데, 이 날의 참삼은 최후 심판 때 죄인들이 당할 심판이 어떠할 것인지를 미리 보여주는 그림이기도 합니다.
사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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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절: 바벨론 패망 이후 유다 포로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 올 것을 예언한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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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절까지는 바벨론이 스스로 하나님보다 높은 채 교만해짐으로 받게 될 심판의 참상에 대해서 기술하고, 24-27절은 다시 북이스라엘을 친 앗수르를, 28-32절에는 이스라엘의 만년 대적자들인 블레셋 (지금의 팔레스타인 지역) 의 심판에 대한 경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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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바벨론은 요한계시록에서 ‘음녀’ 혹은 ‘세상’ 을 상징합니다. 열국의 심판은 종말에 세상의 죄인들을 심판을 가리키는 프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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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온 세계를 향하여 정한 경영이며…”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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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입니다. 오늘날 세계 정세가 불안하고 복잡하며 전쟁과 전쟁이 중단되지 않을지라도 이 모든 역사를 결국 이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그 중심에는 교회를 통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시는 구속사가 있습니다.
사 15 &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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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압에 관한 경고 (15:1) 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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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압은 아브라함의 조차 롯과 롯의 딸이 소돔과 고모라 성의 멸망을 피해 살 때 롯에게 술을 먹여 재운 뒤 관계해서 낳은 아들의 후손들입니다.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대적했고, 광야 2세대를 음란괴 우상 숭배에 빠지도록 미혹하게 하며 그들 스스로 극심한 우상숭배를 한 민족 국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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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장막에 인자함으로 왕위가 굳게 설 것이요 그 위에 앉을 자는 충실함으로 판결하며 정의를 구하며 공의를 신속히 행하리라” (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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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를 가리킵니다. 유다의 회복을 예언하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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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압 알” 모압의 수고 (15:1), 길하레셋. 십마 (16:7,8): 모압이 자랑하던 유명한 포도 산지
사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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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메섹에 대한 경고입니다 (17:1). 다메섹은 아람 (수리아)의 수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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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람과 결탁하여 형제국 유다를 치려했던 북이스라엘 (에브라임)의 멸망에 대해 예언하면서 그 가운데 얼마를 남겨 두겠다고 말씀합니다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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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방의 충돌이란 (13), 세계 나라들이 서로 전쟁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이들을 흩어버리시며, 깨뜨려 버리시는 분이십니다 (13).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단지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시는 개인적 하나님을 초월하시는 역사의 주권자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사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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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의 심판에 대한 경고 (1) 입니다. 구스는 애굽 남부와 현재 수단 지역인 에디오피아를 포함한 광활한 지역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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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절의 그때란 하나님 나라의 완성의 날, 새 하늘과 새 땅을 회복하실 날입니다. 그때에 열방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장면은 계시록에서 보여 줍니다 (21:1). 구약 성경 중간 중간에 신약 성경도 마찬가지이지만 열방이 주께 돌아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예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 세상 모든 민족이 주께 돌아와 그의 이름을 부르는 일을 통해 이루어졌고 성취되어 가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민족이 주의 복음을 듣고 믿어 주를 고백하는 일은 지금도 진행중입니다. 그러다가 종말에 하나님 나라가 주의 백성들이 그리로 들어가서 완성될 것입니다.
사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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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굽 (이집트)에 관한 경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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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굽이 망할 것에 대한 자세한 묘사들이 시처럼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우상 숭배와 신접, 요술등을 하나님 없이 행했고, 지혜를 추구했으나 하나님을 배제한 세상의 지혜였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의지하는 최고의 지혜자들 (소안의 방백, 11) 들을 어리석게 만들고 그들이 잘못된 조언을 왕에게 하도록 그들 마음에 어지러운 생각을 집으넣으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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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그날’ 이란 애굽이 멸망할 날임과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시 사탄의 머리가 깨어진 날이며 궁극적으로 최후 심판을 복합적으로 의미하는 날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여호와의 날, 그날, 그때등의 표현들을 이해하면 해석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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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절은 애굽과 앗수르 까지도 하나님께서 고치셔서 하나님께 돌아오며 이스라엘과 함께 그들이 경배하는 예언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오시기 전 역사에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집트이든 앗수르이든 모든 열방에 교회가 세워지고 주께 경배하는 자들로 편만해 져 가고 있습니다. 주님의 지상 명령에 의해 성취되는 예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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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 7백년전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 놀랍도록 신약에서 성취되어 가며 종말의 완성을 바라보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사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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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수르 사르곤 왕이 다르단을 아스돗을 침략한 해 (1) 라는 연대의 정보를 줍니다. 이때는 주전 711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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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이사야에게 행위 계시를 하라고 하십니다. 벌거벗고 맨 발로 3년을 다니는 것입니다. 이사야를 보는 자들이 이집트와 유다가 어떻게 될지를 눈으로 예언하는 것입니다. 애굽의 괴롭힘에서 벗어나려고 하나님이 아니라 당시 힘 있는 애굽을 의지했던 유다의 죄를 경고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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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선지자의 사역이 참 어려움을 봅니다. 삼년동안 나체로 다니면서 말씀을 전한 이사야를 생각해 보세요.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는 하나님께 순종하여 하나님의 백성들과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뜻을 선포합니다.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모든 자는 (특히 목회자는 더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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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보다 사람을 의지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이기에 우리에게도 하시는 경고입니다. 나는 지금, 우리 교회는 지금 누구를 의지하고 있나요?
사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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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의 “해변 광야” 란 해변인데 물이 없어 광야같다는 표현이어서 바벨론의 황폐한 상태를 은유하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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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절: 바벨론 멸망에 관한 경고 (묵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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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 두마에 관한 경고이고, 13-17: 아라비아에 관한 경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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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방의 심판에 대한 메시지 단락의 첫 부분에 “심판의 대상에 대한 경고” 라는 일종의 표제어가 붙어 있어 이해를 도와줍니다.
사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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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골짜기에 관한 경고” (1)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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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을 보니 유다 (예루살렘) 에 관한 경고 (9, 10)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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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절: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어차피 죽으면 끝날 인생, 살아 있을 때 마음껏 즐기고 누리며 살자”- 오늘날 사람들의 가슴에 있는 모토입니다. 유다 역시 하나님의 패망의 경고에 회개하기는 커녕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하며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잠언의 미련한 자, 어리석은 자, 완고한 자의 전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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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이후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자는 이 땅에서 아무리 기뻐할 지라도 그건 가짜 기쁨입니다. 진정한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심판대에서 무죄 선언 받아 영생을 얻는 것이 보장된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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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현실에만 코박고 사는 모든 인생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쾌락만은 추구하는 자나, 현실의 필요와 미래 준비만을 위해 너무 바쁘게 일만 하는 자도 어리석기는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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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절은 예수께서 인용하신 구절입니다 (마 16:19; 계 3:7-8)
사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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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로와 시돈에 관한 경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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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두로와 시돈이 망할 것이다’ 라고 하지 않고 아름답기까지한 시적, 문학적 묘사들로 이들멸망을 그리며 예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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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부유하고 강한 나라들이 모두 하나님의 예언대로 무너집니다. “이는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라” 는 반복되는 구절들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계속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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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하늘을 바라보고, 도로 위를 바삐 지나가는 차들과 거리의 붐비는 사람들을 보세요.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동일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한치의 오차도 없이 역사의 수레바퀴는 굴러가고 있습니다. 잠깐 코로나 때를 추억해 보면, 그 누구도 그런 재난을 몇 년간 겪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습니다. 지나가고 나니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사라져 가며 다시 하나님을 망각해 갑니다. 신자는 항상 개인의 종말이든 역사의 종말이든 의식하며 현재를 신실하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사 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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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곧 종말에 있을 심판과 축복에 예언입니다. 이샤야 ‘소묵시로’ 이라고도 합니다.
사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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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의 메시지 이후 회복 (구원) 의 메시지가 나옵니다. 심판후 남은 자들이 주께 돌아와 주의 이름을 부르며 영광을 돌리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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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반드시 심판이후에 옵니다. 이스라엘의 죄악은 70년 바벨론 포로 생활인 형벌의 기한을 다 치룬 후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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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으신 죄인이 받아야 할 형벌을 다 담당하셨기에 믿는 자에게 구원이 주어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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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그날 (21) 이란 이중성취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1차적으로는 포로 귀환의 때의 회복 (부분적 성취) 와 주의 재림의 때에 이루어질 왼전한 성취를 함께 예언하고 있습니다. 종말의 성취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성취입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1차 성취는 부분적 성취입니다.
사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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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는 구원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찬양합니다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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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만군의 주가 베푸실 종말의 잔치 (연회)를 그리고 있는데 만족, 충만, 기쁨, 즐거움의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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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절: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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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7:17, 21:4의 말씀과 병행 구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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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살아 있기에 영생에 대한 소망이 약할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눈 앞에 둔 사람에게는 사망이 멸하고 영원히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소망이겠습니까? 이 영생은 예수 안에서 말씀 안에서 지금 영적으로 누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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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에 주께서 베풀어 주실 연회는 어린양 혼인 잔치에서 주와 함께 나눌 성찬을 바라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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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원의 날을 기다린 성도들에게 이 날은 기쁨과 즐거운 환희의 날이 될 것입니다 (9).
사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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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는 그날에 주께서 악인과 대적을 심판하시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것을 노래합니다. 이 노래는 우리도 메시아 왕국이 완성된 날에 함께 부를 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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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타락으로 멸망이 눈 앞에 있는 유다의 운명을 예언하는 이사야는 주의 회복과 구원을 열망하며 회복의 메시지에 위로 받으며 주께서 그것을 이루실 것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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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반역한 유다 백성들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경건한 믿음을 지킨 남은 자들은 주의 징계로 환난을 당할 때에 주를 간절히 찾고 기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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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인생의 환난을 당할 때에, 그것이 나의 죄악으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이든지, 공동체의 죄악으로 인한 것이든지, 세상의 악으로 인해 당하는 것이든지 두 가지 주의 백성의 자세를 봅니다. 1) 주를 앙모하고 2) 간절히 기도 (whisper)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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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절은 구약에 나타난 부활 사상입니다. 대체로 구약은 영생이나 부활에 대한 사상이 희박한 데 여기서 분명히 나타납니다.
사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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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는 그날 (종말) 에 회복될 하나님의 백성들의 구원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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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가 포도원 (하나님의 백성과 그들의 거처) 지기가 되어 포도원을 가꾸십니다 (2-4). 찔레와 가시가 대항하지 못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내린 땅에 대한 저주가 거두어진 동산의 회복입니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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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불의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 가 용서받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사탄을 이기시고 승리하심으로 성취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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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방으로 쫓겨난 주의 백성들이 돌아와 예배합니다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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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예언은 1차적으로 그들이 바벨론 포로 귀환에서 성취되나 (스 1, 2장) 부분적이며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사역을 통해 완성될 종말 (그날, 여호와의 날) 에 성취될 것입니다 (계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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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지상에서 회복되고 완성될 영광의 낙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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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의 종말의 구원과 회복의 메시지에는 완성될 하나님 나라인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이미지가 자주 나옵니다. 많은 신자들이 천국을 우주 공간 어디에 하나님이 새롭게 만든 장소로 생각하지만, 성경 전체의 내용을 바탕으로 보면 천국은 지상에 실현됩니다. 이사야는 반복해서 하나님 나라가 땅의 회복을 통해 도래할 것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도 땅, 포도원과 같이 에덴동산의 회복된 그림을 보여 줍니다. 이는 계시록 21장 22장에서 묘사한 그림과 일치합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선한 창조계의 재생 (Regeneration) 이며 갱생 (Renewal) 입니다. 이런 천국관을 가질 때 우리는 오늘의 삶과 영원의 삶이 서로 맞닿아 있음을 알고 의미있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저 천국의 내세만을 바라보며 오늘의 삶을 무시하는 영지주의나 이원론적 신앙이 아닙니다. 이미와 아직 사이의 긴장의 시간을 살아가는 천국 시민들입니다. 그러니 오늘 주어진 하루를 이미 이루어진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기쁘게 감사하게 살아갑시다!
사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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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이스라엘 왕국의 멸망을 예고 (1-4)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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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심판으로 남은 자들이 유다 왕국 역시 북이스라엘과 다름 없이 불의, 향락, 부패와 타락으로 점철된 것을 지적합니다. 유다 지도자들 (백성들 포함)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비웃습니다 (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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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거짓 평안과 안정의 현실 안주 (15) 를 깨고 주께서 그들을 심판하실 것을 경고한 후 (14-21), 회개를 촉구합니다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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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주의와 물질 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현실이 주는 안정과 안주는 무의식적으로 종말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합니다. 평안하다 평안하다 스스로 외치는 겁니다. 주의 재림은 번개처럼 임할 것입니다. 개인의 종말도 우리는 언제일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늘 깨어서 기도하고 늘 주의 부르심의 날에 준비되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주님 맞을 준비가 항상 되어 있을 때 진정으로 마음의 평안을 누리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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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살아가는 모든 지혜는 주께로부터 나온 것임을 말하며 하나님의 모략과 지혜를 찬양합니다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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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절의 “주께서 시온에 두신 한 기초 돌” 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성경에 나오는 돌에 대한 예언 중,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 머릿 돌이 된다는 것” (시편 118:2; 마 21:42)
사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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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엘: 예루살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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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이 함락되지만, 그들을 친 대적 또한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아닌 먼지처럼 날려 버릴 것을 말합니다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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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백성들의 마음이 결여된 형식적 하나님 경외를 질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말씀을 듣고 읽어도 깨닫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고 듣지 못하게 한 것이라 말합니다 (계시의 은닉성과 주권성). 스스로 말씀에 대해 완고해지지만 동시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셔서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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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사역의 성격이 이렇습니다. 받고 은혜를 받는 사람은 더 많은 은혜를 누리지만, 완고한 자는 더 마음이 단단해져 말씀에서 완전 차단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들을 때 어떻게 들을지 늘 주의해야 합니다. 좋은 마음으로 부드러운 마음으로 순종하는 마음으로 듣지 않으면 말씀 때문에 마음이 더 강퍅해 지고, 그런 마음은 하나님을 노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29:13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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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적 종교 생활, 마음은 하나님을 떠나 세상을 섬기는 우상 숭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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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유다 백성이 받은 경고는 지금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신앙 생활이 형식과 습관이 되어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결핍된다면 그건 하나님께서 토해내는 신앙 생활입니다. 수 많은 교인들이 매주 예배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함에서 나오는 예배가 아니면… 하나님은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중심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가 주께서 기쁘게 흠향하시는 제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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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절은 주전 586년 바벨론 침략으로 유다와 예루살렘이 함락될 것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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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4는 심판 후에 회복과 구원의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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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 22-24절와 같이 그날에 대한 예언의 부분들은 반복해서 말씀드리지만 ‘복합 성취’ 로 이해해야만 해석이 됩니다.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전체를 통해 성취되는 내용입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구원 사역으로 이루어졌고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시 이런 내용들이 이루어짐), 예수님의 사역은 종말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경험할 실제를 미리 보여 주는 가시적 나라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다스림 가운데 살아가는 교회를 통해 이 예언의 성취를 영적으로 누리고 있음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사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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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세상적으로 강대국이었던 앗수르를 의지하다가 큰 징계를 받았지만, 이젠 이집트가 강국으로 다시 부상하니 이집트에 손을 내밉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뜻을 묻지도 않고 말입니다 (2). 그런 패역한 행동을 하나님은 경고하시면 그들의 행동의 무익함을 지적하십니다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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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만날 때 누구를 의지하겠습니까? 신자라 할지라도 내 생각에 위기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 돈, 방법, 지식, 지혜를 의지하기 마련입니다. 위기 때 의지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면 참 신앙이 드러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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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절: 네겝 짐승들: 하마로서 애굽을 상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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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절 라합: 거만, 자랑, 마귀의 힘, 괴물 상징, 여기선 애굽 (바벨론) 상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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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는 선지자나 목회자의 말을 듣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듣기에 부드럽고 평안하다는 말을 쫓아갑니다. (8-11). 이에 대해 하나님은 완전한 멸망으로 심판하시겠다 경고하십니다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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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심판의 메시지 뒤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려고 은혜주시려고 기다리고 계신다는 달콤한 메시지를 주십니다 (18,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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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병주고 약주는 것 같지만, 강한 심판의 경고 역시 은총입니다. 회개하라고 촉구해서 구원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경고하시고 회복의 메시지를 통해 그들이 돌아와 누릴 유익과 기쁨을 기대하게 하는 것입니다. 단지 경고만 하면 돌아오기 어렵습니다. 얻을 유익을 함께 말할 때 회개의 동기는 더욱 배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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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수르에 대한 맹렬한 진노와 심판을 말합니다 (2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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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벳: 이스라엘 자녀들을 몰렉에게 인신제사를 드리려고 불태웠던 곳인데 지옥을 상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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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수르에 대한 심판은 지옥불의 심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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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운 경고이지만, 이를 통해 우리는 죄를 멀리하게 되며 또한 그리스도로 인해 심판을 면하고 낙원에 들어가게 된 것에 큰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사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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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세상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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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의지한 말, 병거의 많음, 마병의 심히 강함은 지금 사람들이 의지하는 “권련, 명예, 부, 힘, 재산, 인맥” 같은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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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들이 필요하나 이것들을 의지하며 사느라 주를 섬기지 않고 주보다 더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진노를 당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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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사람들이 의지하는 ‘애굽’ 은 그저 사람이고 육체일 뿐이어서 하나님이 치시면 한 순간에 몰락한 존재입니다.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멸하실 때 함께 멸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요지는 그런 것들 의지하지 말고, 참된 신이며 영이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길이 살길이라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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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강림하셔서 예루살렘을 보호하시고 구원하신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요?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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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앗수르를 심판하시고 유다를 그 손에서 구원하신다는 일차적 의미가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 때 성취됨). 그러나 이는 동시에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와 구원의 손길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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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세상적인 것, 하나님이 아닌 것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진정 살길입니다! 지금 나는, 우리는 누구를, 무엇을 의지하고 있는지 돌아보고 회개하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만 의지합시다.
사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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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은 메시아 왕국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심판의 메시지와 함께 이스라엘과 유다가 회복되고 구원받는 한 날 (때)을 지명하는데 한 왕이 나와서 공의와 정의로 통치할 때이며 (1), 이는 하나님의 영이 위에서 부어짐으로 이루어집니다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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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는 현재 유다의 죄악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의 메시지를 전함과 동시에 이중 예언으로서 궁극적으로 회복과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부어지심으로 완성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위에서부터 영이 부어지는 사건은 오순절 성령 강림 (행 2)에서 성취되었습니다. 그 이후 시대부터는 지상에 임한 성령에 의해 펼쳐지는 구원 사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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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말씀을 더 현실감있게 이해하려면, 우리가 그 시대로 가서 패역한 유다 백성들 사이에 살아가고 있다고 상상해 보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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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강대국에 둘러싸여, 자신들의 죄악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하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듣고 있다 생각해 보면 됩니다. 이 메시지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국운이 달려 있습니다. 심판의 메시지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회복의 메시지를 주시면서 소망을 놓치 않게 하십니다. 메시아가 오셔서 다시 하나님의 나라를 다스시기를…. 왕이 오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대망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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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들이 애타게 기다리던 메시아, 의로운 한 왕이 이미 왔으며, 위에서부터 부어지는 성령이 이미 오셨음을 과거의 사실로 경험한 자들입니다. 지금은 부활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최후 구원의 날까지 다스리고 계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이며 은혜인줄 모릅니다.
사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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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장은 히스기야 당시 앗수르 왕 산헤립이 침략해 온 사건 (왕하 18, 19장) 을 배경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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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는 대적으로부터 (앗수르) 환난 가운데 있으면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응답으로 비록 하나님이 악한 자를 들어 (앗수르) 유다의 죄악을 심판하지만, 결국 하나님은 유다를 회복시키시고 심판의 막대기였던 대적 앗수르를 멸할 것임을 예언합니다. 이를 통해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의지하고 경외하라고 (6) 권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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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그들이 보게 될 구원은 가까운 미래에 완성되기 보다는 미래에 보게 될 메시아, 왕에게 있습니다. 주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좌정하시고 다스리시며 죄를 사하시는 때입니다. 이런 구절들이 구약의 말씀을 오실 메시아 (기름부음 받은 왕, 제사장, 선지자) 를 대망하게 합니다.
사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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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방과 에돔 (궁극적으로 주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사탄의 나라 상징)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끔찍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1-7, 8-17). 이런 천지 개벽의 묘사는 ‘상징’ 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열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철저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종말에 당할 심판의 철저함을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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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믿는 자가 이런 심판을 받지 않는 것을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다 마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의지하지 않고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의지하지 않는 인간은 그 자체가 교만한 것이며 소망이 없는 인생인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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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의 예언은 대체로 이중적인데 여기서도 그렇습니다. 당대 혹은 머지않은 장래의 일들을 예언하지만 궁극적 성취는 ‘여호와의 날’, 그날’, ‘종말’ 에 완전히 성취될 사건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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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에 성도들의 피를 흘린 세상,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교회를 대적하던 모든 세력들은 그의 우두머리인 사탄과 함께 철저한 하나님의 보복과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은 우리에게 거룩한 삶과 믿음의 인내의 경주를 끝까지 달려가게 할 힘입니다.
사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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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은 확실히 구원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위해 보복하시고 회복하실 구원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원의 결과가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을 하실 때 일어난 일들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눅 4). 그러니까 광야에 꽃이 피고, 광야와 사막에 물이 흐르며, 자연세계가 회복된 모습 마치 에덴동산과 같은 구원의 모습은 그리스도로 인해 이루어지면, 이것은 종말에 완성될 지상 낙원, 회복된 에덴,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이미지를 함께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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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들어갈 수 있는 자는 “오직 구속함을 받은 자만” (9),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만” (10) 들어가서 거주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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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약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 (초림과 재림) 이루어질 그리스도의 나라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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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이런 메시지를 들었던 구약의 경건한 백성들은 메시아를 대망하며 하나님 나라를 기대하며 현재의 환난을 견디며 현실을 살아갔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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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약속이 이미 성취된 시대인 그리스도가 이미 오신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고 있는 신약의 성도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도 재림의 약속이 남아 있습니다. 그때는 여기서 그리는 모든 구원의 일들이 지상 가운데 실현될 것입니다.
사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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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18:13-37절 (대하 32:1-9) 의 역사적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를 읽을 때 이런 역사적 배경을 항상 염두에 두고 읽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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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수르의 랍사게는 유다 왕 히스기야가 주를 의지하는 것을 조롱합니다. 유다가 믿고 의지하는 신이 무능력하며, 자기들의 신보다 힘이 없음을 멸시하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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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보다 신자가 세상적으로 성공하지 못했을 때 이런 비아냥와 조롱을 쉽게 받습니다. 기독교를 기복으로 보면 안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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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는 자기들이 유다를 침공하러 온 것이 여호와의 뜻이라고까지 오용합니다. 물론 하나님이 그들을 진노의 도구로 사용한 건 맞지만 도구가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을 모독하는 주객전도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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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배울 점은 하나님의 교회가 타락할 경우, 세상과 구별되지도 않고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을 의지하고 추구하며 살 때, 여지 없이 교회는 세상의 힘으로 부터 조롱과 멸시를 당합니다. 교회의 영광 뿐만 아니라 교회는 성도의 삶은 하나님의 영광과 이름에 직결되어 있기에,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이 함께 땅에 실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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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 가운데 나의 개인의 삶은 언제나 교회와 하나님의 명예, 이름, 영광과 직결되어 있음을 잘 기억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섬겨야 하겠습니다.
사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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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19:1-7절의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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랍사게와 산헤드립이 유다와 히스기야 왕을 모독하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훼방하는 말을 할 때에 히스기야는 성전으로 가서 여호와께 묻고 기도하며 의지합니다 (1, 15). 그의 기도는 하나님의 훼방된 이름이 다시 높임 받으며, 오직 주만이 참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을 온 세상이 알게 하기를 간구합니다. 온전히 하나님편을 위한 기도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기도가 됩니다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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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절부터는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부탁하는 말에 대한 답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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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자기의 이름과 영광을 위해, 다윗왕과의 언약을 위해 유다를 앗수르의 침공에서 지키고 그들을 진멸하겠다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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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역사의 주권자이시기에 말씀대로 그 즉시 산헤립 왕이 죽임당하고 앗수르 군대는 제대로 전투 한 번 하지도 못하고 하나님에 의해 십팔만 오천명이 죽임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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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고, 예수님을 모독하고 욕하며, 조롱하는 자들, 더구나 예수 믿는 자들을 미워하고 핍박하는 자들에 대해 하나님은 이런 심판을 유보하십니다. 그러나 언젠가 이와 같은 준엄한 심판을 받을 날이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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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가운데 히스기야와 그의 신하의 회개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멸망시키시려는 뜻을 잠깐 유보하십니다. 교회가 공동체적으로 함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잘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왕하 19장 정독 노트
사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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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 20:1-11절에서 히스기야가 병들었을 때, 그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낫게 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는데 동일한 사건을 이사야 선지자의 관점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내용은 비슷하나 사건의 순서의 배열이나, 사건의 상세한 부분들에서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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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올이 지옥인 이유는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주께 감사하거나 찬양하지 못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시편 기자가 늘 노래하였듯 하나님의 부재가 스올의 고통입니다. 죽기 싫어서 스올에 가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그곳이 하나님과 단절된 곳이며 임재가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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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가 생명 연장을 구한 건 아마도 단지 오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유다의 운명과 안위에 대한 왕으로서의 탄식과 사명때문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다윗의 언약을 기억하며 유다를 보전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마음이 히스기야의 기도에 응답하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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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 20장 도움 노트는 아래 화살표를 누르시면 펼쳐지니 참고하세요.
왕하 20장 연관부분 정독 노트
사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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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이 낫자 교만해진 히스기야는 자신의 부를 자랑하는 어처구니 없는 죄를 범하고 이로 인해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의 유다 심판의 예언을 듣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중심적 왕으로 굳어져 버린 듯, 자기 때에는 평화로울 것이라는 사실을 좋게 여깁니다. 결코 완전한 왕은 없습니다. 다윗 왕 이후로 그 어떤 이스라엘의 선한 왕도 하나님의 기준에 합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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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왕 그리스도를 계속 기다리게 합니다. 우리 구주께서는 겸손의 아이콘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하늘 영광 다 버리고 비천한 인간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으로 사는 것 만큼 자기비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 복종하기 위해 낮아지고 낮아지셨고 마침내 죽으시고 장사되시기까지 낮아지셨다가 높아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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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겸손을 배우며 살아갑시다. 교만은 패망의 지름길입니다. 교만은 타인을 상하게 할 뿐만 아니라 자신과 자기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위험한 특성입니다. 타인의 칭찬과 인정, 자기 성취와 성공에 도취되어 교만하지 않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39장까지는 전반적으로 심판의 메시지입니다. 중간 중간 회복과 구원의 메시지가 곁들여져 있지만 기본적인 주제와 내용은 북이스라엘, 남유다와 주변 열국들에 대한 심판의 예언이었습니다.
40장부터 66장까지는 구원과 회복의 메시지가 중심입니다. 구원이 고난받는 종 (메시아 예수) 을 통해 오게 됨이 주 메시지입니다.
사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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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소망의 메시지입니다 (1-11). 이 메시지를 들었을 유다 백성들 가운데 신실한 자들이 받았을 위로는 심히 컸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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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절은 세례 요한을 예언하는 것이며 그가 행할 사역의 내용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보다 먼저 나서 예수님의 사역을 예배하고 예수님에 대해 미리 백성들에게 가르쳤던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였습니다 (마 3:3, 막 1:3, 눅 3:4-6, 요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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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절의 아름다운 소식은 복된 소식 복음입니다. 멸망의 운명 가운데 구원을 알리는 굿뉴스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는 모두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불변성과 영원성을 노래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입니다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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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에 답이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좋습니다. 읽고 묵상하고 공부하면 언제나 하늘의 영원한 진리에 닿습니다. 그래서 사모합니다. 보고 또 보고 듣고 또 듣고 싶은 영생의 말씀입니다. 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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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31절은 하나님은 그 어떤 존재와도 비교할 수 없음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문학적으로 멋들어지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주 만물과 자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과 그 무엇이 비교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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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닌 것들을 의지하는 인생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의지할 때 창조의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에게서 날마다 솟아오르며 피곤하지 않는 다함이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때로는 곤비하고 피곤하고 무력한 삶을 살아가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이사야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사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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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 전체의 기조는 “두려워하지 말라!” 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살아계시며 참된 신이며 전능하신 분이어서 자기 백성을 건지실 구속 (원) 자 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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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절 북방에서 오게 할 심판자는 바사 (페르시아) 왕 고레스를 말합니다. 이 자를 통해 바벨론 포로 생활이 끝이 납니다. 41장은 미리 바벨론 포로기의 유다 백성들을 상정하고 구원의 메시지를 통해 소망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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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9: 우상의 거짓과 헛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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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신들- 이데올로기, 철학, 물질주의, 소비주의, 외모지상주의, 부, 명예, 쾌락, 권력, 섹스, 안락한 삶- 은 바람이며 공허한 것 뿐입니다 (29). 죽은 것, 허상이기에 실제로 인간이 아무리 추앙해도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비인격체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살면서 최고로 여기며 추앙하며 사는 것은 참 어리석은 것이며 무지한 것이며 위험하기까지 한 삶이죠. 결국에 개인의 종말의 순간, 주의 재림에 순간 모든 것이 드러나고 결론이 날 것입니다.
이사야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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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차 올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종이 어떤 존재인지 기술한 후 (1-9) 그로 (메시아) 이스라엘이 구원받을 것을 약속하는 내용 (10-17). 그러나 여호와께 순종하지 않는 백성들이 당할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심판의 경고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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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장부터 53장 사이에는 보통 4개의 “종의 노래” 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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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1-9, 2) 49:1-13, 3) 50:4-11, 4) 52:13-5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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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은 당대의 사람들은 이 고난받는 종, 메시아를 대망하였지만, 궁극적으로 모두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역 가운데 완전히 성취된 예언적 노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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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들을 고난받는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종을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내용으로 이해할 때 신약 성경, 특히 복음서의 내용들이 온전히 깨달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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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종의 노래 부분인 42장 1-9절은 여호와께서 부르신 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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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년 전 하나님의 선지자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역을 예언하였고, 한 점 오차도 없이 모두 성취된 사실을 볼 때, 우리가 믿는 신앙이 얼마나 참되며, 하나님이야 말로 우상이 아닌 참되고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을 알 때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주의 길로 다니는 것이 얼마나 안전하고 복된 삶인지를 다시금 깨닫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할렐루야!
사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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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주께 얼마나 존귀한 자이지 모릅니다. 주께서 구속하셨고, 부르셔서 소유 삼은 백성입니다 ( 1-7; 벧전 2: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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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와 구원의 목적: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고 자기 백성 (이스라엘, 교회) 을 구원하신 목적이 <하나님 자신의 영광> 을 위해서 입니다 (7). 또한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려고 지으셨습니다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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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은 우리의 삶의 목적, 존재의 이유를 잘 설명해 줍니다. 이 사실만 알아도 우리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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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자신의 존재와 행하시는 일을 스스도 계시하시며 자기와 이스라엘의 사이의 언약 관계를 말합니다. 동시에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죄악의 죄악을 거듭하며 하나님을 배반한 자들이어서 하나님께서 진멸하시겠다 경고하십니다 (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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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장은 전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과 배반과 불순종의 모습에 읽는 저 자신도 진절머리가 날 정도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끊임없이 반역하는 이스라엘을 도대체 하나님은 왜 이토록 경고하셔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일까요? 이스라엘이 우리입니다. 우리 또한 놀라운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지만 늘 언제나 하나님과 멀어져 내가 주인이 되어 내 삶을 살아가며, 철저히 자기 중심적 생을 살아가지 않습니까? 제 자신에게 답답함을 느끼며, 진절머리가 나고, 불만족스럽습니다. 이런 나를 변함없이 사랑하시며 하나님을 찬송하고 섬기는 존재로 이끌어 주시는 주의 사랑에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사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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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절 말씀은 오순절 성령 강림사건에서 성취되고, 이후 예수를 믿는 모든 자에게 부어짐으로 성취되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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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야곱, 이스라엘은 모두 지금의 ‘교회’ 로 대체해서 받아들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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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절은 하나님의 유일신되심을 말씀하시면서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만 관계하시는 유일한 하나님이심을 또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아도 우리는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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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0절은 특히 우상은 헛되고 무익하며 무능한 것을 신랄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에게 절하고 숭배하는 인간이 어리석은 것이죠. 현대인들이 하나님 없이 이 땅에서 추구하며 섬기며 사는 모든 것들은 헛된 우상일 뿐입니다. 그런 우상을 섬기는 자는 우상과 함께 영원히 무익하고 헛된 인생으로 함께 사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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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의 메시지 구원의 메시지를 주시는 목적은 그들이 회개하고 주께 돌아오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들의 모든 죄를 사하시려는 전능자의 의지와 약속입니다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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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스라엘=유다=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구원의 메시지는 21-28절부분은 바사와 고레스 왕에 의해 바벨론에서 유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 이후 역사를 보면 이 약속의 성취는 부분적이었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구원의 약속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재림에서 성취되고 완성되는 것을 계속 염두에 두며 읽어 나가시기 바랍니다.
사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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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벅찬 하나님의 구원의 초청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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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는 바사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을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셔서 바벨론 포로민들인 유다 백성들을 예루살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실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하지만 그 내용의 핵심은 오직 하나님만이 온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유일한 주권자 하나님이시기에 (11, 14, 18, 21, 22) 구원의 하나님께 돌아오라 ( 22) 는 말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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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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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님께 돌아가는 것이 구원받는 유일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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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여호와는 신약의 ‘주님’ (Lord, Kurios) 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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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에게 노하는 자, 거부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지만 (24), 그분을 영접하는 자는 영원히 의롭다 함을 얻고 자랑하게 될 것입니다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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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장의 내용들은 구구절절 이 안에 복음이 녹아 있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받게될 구원의 복이 영롱한 별처럼 반짝이고 있습니다.
사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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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이 재미있습니다. 바벨론 사람들이 섬기던 우상들이 짐승과 가축에 실려 나가는데 짐승에게 조차 무거운 짐입니다. ^^ 이런 우상을 섬기는 인간들은 얼마나 어리석은 자들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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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의 패망의 모습을 그리고 있고, 이 모든 일들은 이미 오래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 (10)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교회)을 위해 구원을 베푸시는 일은 반드시 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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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약속은 포로귀환에서 부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에서 성취되었고 재림때 완성될 구원의 약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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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구원의 뜻과 계획이 이루어져가는 하나님의 구속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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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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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바벨론의 최고신인 마르둑 (Marduk)의 별칭입니다. 벨은 가나안 신 ‘바알’ 의 바벨론식 명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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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보”: ‘고지자’ 라는 뜻의 바벨론 신화에 나오는 학문과 저술의 신입니다.
사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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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의 멸망을 예고하시면서 그들의 교만, 그들의 거짓 평안, 그들이 의지하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하는 일에 무능력함에 대해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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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사치하며 평안히 지내며 마음에 자기 자신 밖에 모릅니다. 자신의 삶에 어떤 재난, 재앙, 사고가 없을 것이라 여깁니다 (8). 그러나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한 번에 날려 버리시면 그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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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의 이런 자기 중심성, 교만, 거짓 안정은 오늘날 세상 사람들의 마음 속에 깊이 뿌리 내려져 있는 생각입니다. 신자들조차 세상의 영향으로 유일하신 하나님 대신, 자신이 유일한 신이 되어 자기를 섬기며, 자기를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무용지물일뿐입니다. 날마다 나 자신을 의지하던 것에서 하나님만을 의지해 나가는 씨름이 구원을 이루어가는 신자의 삶입니다.
사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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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새 일, 유다가 알지 못하던 새 일을 듣게 하고 행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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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유다 백성들은 입술로는 하나님을 의지한다, 섬긴다하지만 마음이 결핍된 진실되지 못한 거짓된 것이었습니다 (1,2). 그들은 완고하고 목이 쇠의 힘줄같고 이마는 ‘놋’ 과 같이 패역한 자들임을 지적합니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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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그들을 멸망시키지 않으시고 오래 참으심은 “하나님 자신의 이름과 영광을 위해서” (9) 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시고 사랑하신 백성들이 하나님에 의해 진멸당하면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상 당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와 성도 각자는 이처럼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어떻게 사느냐,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이 높아질 수도 실추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 말, 행동 하나 하나까지도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위해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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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6절은 다시 고레스 왕을 통해 바벨론을 멸하고 유다를 구속하실 것을 예언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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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구원의 그림은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종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기 백성을 죄와 사망과 사탄의 권세에서 해방시키시는 구원의 그림에서 완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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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실패는 지키면 살고 복을 누리는 주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면 평강을 얻고 (18a), 공의가 넘치면 (18b), 번성하고 (19a), 하나님과 지속적인 관계를 누립니다 (19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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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다 지키시고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 안에서 우리는 율법에 순종한 자가 되어 이 모든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의 구원의 결과입니다!
사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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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절은 네 개의 ‘종의 노래’ 중 두번째입니다. 부르는 자는 메시아입니다. 이 종은 예수 그리스도가 부르는 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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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이 종을 이방의 빛으로 삼아 (6) 온 세상에 땅 끝에서까지 남은 자들을 불러 모으시고 구원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압제하던 모든 자들은 구원받은 백성 앞에 굴복하며 승리할 것입니다. 이런 회복을 보며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구원자와 전능자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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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3절의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구속의 사역으로 완전히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을 때 세상의 빛이 되셨고 그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인해 온 열방이 주께 돌아와 경배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역사는 이 일의 반복이며, 마지막 성도가 회심한 이후에 주께서 오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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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세상의 역사는 “하나님의 구속사!” 입니다. 할렐루야!
사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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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회복과 구원의 메시지를 하다가 유다의 죄악에 대해 꾸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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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나서 4-9절은 여호와의 종의 노래 세번째 부분입니다. 메시아의 고난과 승리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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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는 하나님께 보냄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하는 자입니다. 선지자는 핍박, 박해, 모욕, 거절을 당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뿐만 아니라 구약의 선지자의 직분과 삶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선지자되심의 모형입니다. 선지서를 잃을 때는 항상 최종, 궁극적 참된 선지자 되신 예수님과 연결시켜 이해애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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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은 예수 안에서 모두 세상에서 선지자의 사역을 하는 자들입니다.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을 전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세상으로부터 핍박, 박해, 모욕, 거절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담대해야 합니다. 이마가 부싯돌처럼 단단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그 선지자의 사역이 지금 우리가 예수 안에서 감당해야 할 사역입니다.
사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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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는 여기서도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의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이전에 했던 유다의 심판의 메시지는 이 글을 듣고 읽는 당시 유다 백성들에게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이미 그 일이 일어난 때를 상정해서 그때 주만 의지하고 그 침략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 간 이유는 그들의 죄악 때문이며, 그곳에서 하나님의 심판의 형벌을 다 받은 후에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 올 것이라 위로합니다. 타락한 유다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에 순종하던 경건한 자들은 이 말씀으로 인해 회개가운데로 나왔을 것이고 또 실제 바벨론에서 포로로 살던 유다 백성들이 이 글을 읽었을 때는 큰 위로와 소망의 메시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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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절: 여호와의 회복의 모습이 에덴과 주의 동산 같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땅은 하나님 나라였고, 회복된 에덴동산이었는데 다시 잃어버렸습니다. 그렇기에 다시 회복될 하나님 나라 역시 에덴동산 같을 것이지만 그때는 포로 귀환에서 부분적인 이루어짐입니다. 주의 오심으로 우리에게 이미 주어졌고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하여) 그가 다시 오실 때 이루어질 나라는 영광스러운 에덴, 다시는 잃어버릴 수 없는 여호와의 동산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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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절에서 유다는 그들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분노의 잔을 다 마신 후에야 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다가 그들의 죄로 인해 받은 하나님의 진노의 잔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들의 죄를 대신해 받으신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남김없이 십자가에서 다 마셨기에, 우리가 자유케 되어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어 살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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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이 죄로 인해 소망없는 우리들에게 참된 위로와 소망은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대신해 죽으셨다는 복음에 있습니다!
사 5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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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시온’ 이란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말합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새로운 백성들은 오직 거룩한 자 할례를 받은 자 (마음의 할례) 만 들어 올 수 있습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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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유다가 당시에 하나님이 아닌 강한 애굽을 의지함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통해 그들을 징계하신 일이 배경입니다. 그 가운데 애굽이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할 때,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위해 유다를 구원하신 일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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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자기 백성 가운데 (예루살렘) 다시 오셔서 거하시는 날이 구원의 날, 회복의 날입니다. 이 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로서 세상에 오실 때를 가리키며, 주의 백성들은 아기 예수의 나심과 그분의 공생애 사역 가운데서 주의 구원을 보았으며,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다시 거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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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주를 믿는 자들의 모임인 교회 가운데 주가 거하시기에 우리는 교회로 모일 때 마다 주를 보고 주의 구원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사야를 읽으면서 성경의 예언과 약속들이 이루어진 영적 현실을, 매 주일 교회로 모일 때 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선명하게 누리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교회로 모여 완성될 구원의 날을 함께 바라보고 소망하며 격려하는 것이 주일의 모임입니다.
사 52:13-5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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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의 종의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성도들이 부른 노래” 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그리스도의 비하 (52:14, 53:1--와 승귀 (52:13, 15)”라고 합니다. 빌립보서 2:9-11절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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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성찬식에서 ‘잔’을 나눌 때 제가 낭독하는 본문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서 찢기신 그리스도의 살과 흘리신 피의 의미를 아주 잘 우리에게 보여주고 설명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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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고난받는 종을 통해 어떻게 죄인이 구속받는지에 대한 명확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구약에서, 이사야서 중에서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 (죄를 대신하여 속하심)의 사역을 아주 선명하게 미리 예언하고 보여주는 복음의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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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절: 예수님의 인간적 외모와 매력은 볼품이 없었습니다. 약하고, 아름답거나 잘 생기지도 않고, 빈약한 몸이었을 겁니다. 외모를 보는 세상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모습입니다.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이런 죄성을 그리스도의 모습을 통해 폭로하시며 참된 믿음을 가르치시기 위한 하나님의 의도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의 외모를 BTS 나 아이돌처럼 모든 사람에게 매력적이고 흠모할 정도로 잘생기게 만드셨다면, 인간들은 그 모습에 끌려 예수를 추종했을 것입니다. 예수에 관한 영화나 애니매이션에서 예수님을 서양의 잘 생긴 청년으로 묘사하거나 그리는 것은 성경을 잘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세상의 시각을 따라 그려낸 상업적 시도임을 간파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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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절은 “그” (여호와의 종, 메시아) 가 당한 모든 고난이 “우리 모두의 죄악” 을 하나님께서 담당시키신 것 (전가, 대속) 임을 묘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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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절에서는 그의 침묵으로 인해 사람들이 그가 자기 죄로 형벌 받는다 여기만, 그는 아무런 죄없이 자기 백성의 죄를 대신해 고난당하고 죽임당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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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절은 부자 아리마대 요셉이 준비한 무덤에 예수님이 장사되는 사건에서 성취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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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절은 종의 사역의 성격과 그 사역으로 인해 이룬 결과를 말합니다. 그의 고난과 죽음이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것이며, 죄인들의 죄악을 담당하셔서 목숨을 버리심으로 많은 사람의 죄를 속하게 되었습니다 (대제사장적 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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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절은 부활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고전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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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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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제: 6절,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모든 경우에 드려지는 제사로 단순 속죄 제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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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건제: 10절, 하나님의 권위와 이웃의 권리를 침해시에 드리는 제사로 배상의 성격이 분명한 제사입니다 (레위기 5:14-6:7).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킴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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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죽음은 구약의 모든 제사를 완전히 성취하셨기에 이젠 모든 제사는 폐지된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언제나 자유롭게 하나님께 죄사함받은 자로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사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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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기억이 맞다면 지금까지 이사야를 읽어 온 장들중에 미래의 회복과 구원에 대한 소망의 말씀이 가장 많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장입니다. 하나님께 범죄한 유다 백성들이 심판을 받아 모든 삶이 피폐해져 있고 무너져 있을 때 이 메시지는 큰 위로와 소망이 되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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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메시지에는 더 이상 하나님이 택하시고 지으시며 신부된 이스라엘을 심판하지 않을 것이며, 이번의 구속은 일시적이지 않으며 영원할 것입니다. 재건될 예루살렘 성전은 보석으로 치장될 것이고 모든 자녀들이 주의 말씀을 들으며 공의로운 다스림 가운데 평안을 누릴 것입니다. 이런 미래의 예루살렘의 모습은 요한계시록 21장에서 묘사하는 새예루살렘의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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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반복해서 말씀드리지만, 구약 성경에서 또 이사야서에서 나오는 구원과 회복과 미래에 대한 예언이나 약속의 말씀을 이해할 때는 순서가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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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에 어떻게 그 예언이 이루어졌는지, 질 것이지를 살핀 후 그 예언이 부분적 성취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그분의 사역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살핍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주의 재림시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서 어떻게 완성되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한가지 예언의 말씀이 여러 단계를 포함하는 성취를 담고 있습니다 (이중성취, 복합 성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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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가 고통을 당하는 이유 중 한 가지는 이스라엘과 유다처럼 회개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떠나 세상을 섬기거나 죄 가운데 살아갈 때 받는 하나님의 징계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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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죄로 인해, 또는 교회 공동체의 죄로 인해, 더 나아가서는 한국 교회의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그에 대한 경고와 징계로 고난을 주신다면, 우리의 반응은 하나님께 죄를 범한 것은 없는지 돌아보고 하나님께 회개하며 돌이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사하시지만 죄에 대한 책임을 여전히 물으시기도 하십니다. 그때에 이사야 54장의 본문은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인애와 사유하심으로 인해 위안과 소망을 얻습니다. 동시에 이땅에서 더 이상 짓는 죄를 그치고 즉시 영화롭게 되어 영원토록 의의 나라에 살 그날을 간절히 바라보고 기대하게 됩니다. 구원받았지만 끊임없이 죄를 짓는 내 안에서의 죄악과의 씨름이 주의 오심을 탄식 가운데 사모하게 합니다!
사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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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값없는 구원 초청의 메시지 입니다. 누구든지 영혼이 목마른자 참된 진리와 생명에 갈한자는 값 없이 돈 없이 영생을 사라고 복음 초청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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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은혜의 초청입니다. 공짜입니다! 사람들은 공짜를 좋아하는 것 같지만, 진짜 가치 있는 것은 대가를 지불해야 살 수 있다 생각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죄인이 인간이 대가를 지불한 들 얼마나 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을 위해 무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목숨으로 값을 치루셨는데 거지가 손을 내밀어 주인이 주는 것을 받듯이 받지 않으면 어떻게 받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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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참된 양식이며 배부름과 만족이며 (2) 또한 생명입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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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절은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 다시 돌아가지 않고 흘러 흘러 곡식을 자라게 하고 추수하게 하여 양식을 주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도 사람의 심령에 내려서 결코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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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은 저처럼 말씀 사역자에겐 얼마나 큰 동기부여가 되는지 모릅니다. 매주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에 열매가 보이지 않아 낙심될 때, 확신을 주어 다시 사역을 할 용기와 힘을 주곤 합니다. 지금 당장 눈 앞에 나타나지 않을지라도 반드시 내가 알지 못하는 때와 장소에서 회심하고 성장하며 주의 사역이 이루어져 나갈 것입니다. 하지만 제 눈에도 말씀 사역의 열매를 볼 수 있기를 정말 간절히 사모하며 기도합니다.
사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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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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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구원의 날에는 하나님이 택한 이스라엘 (유다) 을 넘어 이방인들이 주와 연합하여 안식일과 주의 언약을 거룩하게 지키고 주를 섬길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방인들이 드리는 제사를 기꺼이 받으실 것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주의 성전이 이스라엘 민족만이 아니라 ‘만민’ 이 기도하는 집이기 때문입니다 (7). 당대 유다인들은 이날을 고대하며 기다렸을 것이고, 우리는 이 날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성취되었으며 지금 지상의 공교회의 모습을 통해 이루어져 가고 있음을 목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정화하시면서 이 구절을 인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열성은 모든 민족이 하나님께 예배하도록 하는 것이었고, 이는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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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교회에게 위임하신 지상 명령이 그리스도의 비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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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 (마 28:19). 이 사명에 충실할 때 세상의 이방인들이 주의 이름을 부르며 주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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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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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주일 (2026.8.2) 설교시 건강한 교회를 세워가기 위해 교회 안에 들어온 거짓 교사와 거짓 가르침에 대한 대처법에 대해서 말씀을 전했는데, 56장은 유다 왕국의 거짓 선생들, 거짓 지도자들의 실상을 고발하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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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교사들의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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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파숫꾼: 목회자와 지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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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인→ 무지한 자들, 벙어리개→ 진리를 선포하지 않는 자들, 꿈꾸는 자 → 현실 파악 못하는 자들, 누워있는자 & 잠자는 자 → 영적으로, 사역에, 진리에 게으른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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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 안에는 거짓 교사들이 항상 있어 왔습니다. 그들은 진리와 무관한 자들이며 자기 배를 채우는 탐욕스러운 자들이고, 자기들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을 팔아먹는 사악한 자들입니다. 늘 경계하고 주의하고 분별하며 삽시다!
사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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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절: 유다백성들의 우상 숭배의 참상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 구원받은 백성들이 어떻게 이렇게도 음란하게, 패역하게 철두철미하게 우상을 숭배하며 살 수 있는지 경악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것을 사랑하고 추구하는 것은 영적 간음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들처럼 눈에 보이는 우상숭배 행위를 하지 않을지라도, 마음에 너무 많은 우상들이 있습니다. 그 길은 패망과 파멸의 길이며 다 바람에 날려 가며 사라지는 길입니다 (13). 그러나 주를 의뢰하는 자는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13). 오직 예수를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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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1절: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통회하며 겸손한 자의 마음을 주께서 영혼을 다시 살리실 것며 고치실 것임을 약속하시는 내용입니다. 시편 1편의 논조와 유사한 주제이네요. 복있는 자는 악인들과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묵상함으로 형통하며, 악인들은 바람에 나는 겨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지 못하고 망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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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안에 있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우상임을 자각하고 매 순간 말씀과 기도를 통해 마음의 우상을 점검하고 제거하는 작업들을 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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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통회하고 자복하는 마음, 겸손한 마음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봅니다. 내 자신은 나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한 죄, 부족하게 순종한 죄) 엎드려 통회하며 낮아져서 오직 그리스도만을 의지하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사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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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삶이 없는 종교 의식과 신앙의 열심은 여호와께 가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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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절: 하나님께 어떤 신앙의 행위를 하고는 알아 달라고 공치사 하는 겁니다. 공의로운 삶이 없는 예배 의식은 하나님이 받지 않으십니다 (1-5). 종교 의식 (행위) 이 의미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들을 할 때 진실된 마음으로 의식과 일치하는 삶이 담보되어야 함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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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 (종교 의식)은 공의, 약자 돌봄 (6), 구제와 자선 (7) 입니다. 이런 삶 자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행할 때 누리게 될 결과로서 하나님의 복들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8-12). 복의 내용들이 참으로 좋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너의 뒤에 호위하리리” (8), 주께서 기도에 응답하시며 (9),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어둠이 낮과 같이 되며” (10),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11)…, “물 댄 동산, 물이 마르지 않는 샘 같이 될 것” (11b),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가 될 것”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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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행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의 전 생애는 가난하고, 갇힌 자들, 병든 자들, 연약한 자들, 소외된 자들을 돌보시고 구제하시고, 섬기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렇게 공의와 공평과 자비와 사랑과 평등이 충만한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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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삶은 세상 가운데서 공의와 자비와 사랑의 삶을 살아가도록 늘 힘써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 (제사)이며, 예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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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4절: 안식일의 회복에 관한 약속의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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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유다)의 부패와 타락은 항상 안식일 계명을 준수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언약 백성으로의 의무였습니다. 안식일을 어기는 것은 하나님이 없는 삶과 우상 숭배로 귀결되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종교 개혁은 안식일의 회복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느헤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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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교회가 극도로 세속화되어 가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주일을 더 이상 거룩하게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날이 주의 날이지만, 주께서 부활하신 일요일에 주의 백성들이 교회로 모여 예배하고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며 교제하고 구제와 자선을 베푸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명령이며,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백성됨을 구별하는 거룩의 모습이며, 하나님과 하나님의 구속받은 백성의 정체성을 새롭게 하는 언약 갱신의 날이며,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안식하며 영원한 안식을 함께 소망하고 서로 격려하는 날입니다. 주일을 건성으로, 가볍게, 신실하게 지키지 않는 삶은 교회든 개인이든 세속화로 치닫는 지름길입니다. 특별히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께서 안식일에 오락을 금한 것은 주일에는 진정한 즐거움이 세상의 쾌락, 오락이나 그 어떤 즐거움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 하나님, 그리스도 안에서 즐거움을 누리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사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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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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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는 유다 백성의 죄악을 규탄합니다. 죄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의 관계를 단절시킵니다 (1-2).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과 끊어져 있습니다. 유다의 죄는 무고한 자의 피를 흘리고, 거짓과 악독한 말을 하고, 불공정한 재판과 송사 (기소),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음, 악독, 죄악된 마음과 폭력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지 않으시고 듣지 않으시며, 하나님의 얼굴을 숨기시고 관계를 단절시켜 버리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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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5절: 백성들이 죄를 자복하는 내용입니다. 전반적으로 그들의 죄는 정의가 무너진 삶과 사회입니다. 신앙의 타락은 삶의 정직과 공의를 무너뜨립니다. 기독교는 정의 사회 구현을 위해 목숨 거는 종교가 아니지만, 기독교인들이 구축해 가는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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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1절: 패역한 백성들의 죄로 인해 당한 심판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한 중재자(16) 를 통해 어떻게 구원하실 것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20 & 21절의 약속의 말씀은 확실히 메시아를 대망하게 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가운데 하나님의 영과 하나님의 말이 영원토록 그들과 그들의 후손과 후손의 후손에게서 떠나지 않는 다는 약속은 (21) 예레미야가 예언한 새 마음 새 영(렘 31:33), 요엘 2장과 같은 예언의 말씀이며 신약시대에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에서 성취되었고, 그 이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신자에게 부어지는 성령을 통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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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답은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의 죄 사함도, 구원의 확신도, 영원한 나라에 대한 소망도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하나님의 복입니다.
사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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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세우신 구속자(구원자 메시아, 중재자, 중보자) 가 오심으로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진 예루살렘의 영광 (교회의 영광, 새예루살렘) 을 말하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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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모습이 이스라엘의 가장 찬란했던 왕국 시대인 솔로몬 성전과 이스라엘의 영광으로 회복되는 모습입니다. 다윗 왕국과 솔로몬 왕국은 장차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 어떠한 것인지를 실물로 보여 주었던 이상적 그림이었습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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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의 독자와 청자들은 이 메시지를 통해 큰 위로와 소망 가운에 어둠의 시대를 인내하며 통과했을 것입니다. 포로에서 귀환한 유다 백성들이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였지만 그 모습은 여기 예언된 회복의 모습과는 너무 미약한 성취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또 메시아의 오심을 대망했습니다. 마침내 그리스도는 오셨고 하나님 나라를 교회를 통해 영적으로 성취하셨습니다. 믿음으로 누리는 하나님 나라는 종말에 그대로 완성될 것입니다. 19-20절은 정확하게 요한계시록 21장 새예루살렘 성과 성전의 모습과 동일합니다. 사도 요한이 본 환상의 내용과 같은 것을 이사야 선지자가 거의 800년 전 (사도 요한이 계시록을 주후 90년 경에 기록했다고 보면) 에 보고 에언했다는 것은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처음과 나중을 한 눈에 보시며 그대로 역사해 가시는 주권자이심을 고백하게 됩니다.
사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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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의 오심과 그분의 사역의 결과와 하나님의 백성들 (교회)이 누리게 될 영광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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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절은 주 여호와의 영이신 성령이 ‘내게’ 는 이사야가 아니라 ‘여호와의 종, 고난받는 종’ 인 ‘메시아 (기름 부음 받은 자, 그리스도) 를 가리킵니다. 예수께서는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실 때 세례 요한에게 물로 세례를 받으신 후 성령을 기름붓듯 받으신 후 회당에 들어가셔서 이사야 두루마리를 펼쳐서 이 부분을 읽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을 가리켜 바로 이 말씀이 성취된 것이라 선포하셨습니다. 즉 “이 메시아의 도래가 지금 여기 성취되었다!” 라고 포고하신 것입니다 (눅 4: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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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로 인해 이스라엘 (교회) 은 주의 제사장, 하나님의 봉사자입니다. 우리는 택한 족속, 왕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벧전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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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은 구원의 영광과 놀라운 결과는 메시아의 도래로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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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이미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메시아 왕국 백성으로 살아간다는 구원의 현실이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구원을 결코 가볍게, 당연히 여기지 말며 늘 감사하고 감격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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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유다를 심판하신 이후에 예루살렘의 구원을 위해 쉬지 않으실 만큼 반드시 구원하여 온 열방가운데 영광의 존재가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때는 이스라엘 (제가 유다대신 이스라엘을 쓰더라도 이는 하나님의 백성을 통치하는 이름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이 거룩하고 순결하며 온전한 백성이 됩니다. 다시는 그들의 죄악으로 심판받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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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약속된 내용은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심으로, 그리고 재림으로 완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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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 기자들은 11절은 예수님이 마지막 사역으로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시고 죽으시려고 예루살렘 성을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장면을 묘사할 때 이 구절을 인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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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1:5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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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 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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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 왕이 오시는 것이 억압과 고통가운데 신음하는 백성들에겐 해방과 구원의 날입니다. 왕되신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신 것 자체 (성육신)가 구원이 이미 임했고, 하나님 나라가 이미 도래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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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왕 되신 그리스도께 경배하고 주 안에서 자유와 해방을 누리며 주만 섬기며 살아갑시다.
사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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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장은 하나님이 구원자와 심판자로서 심판을 행하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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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이스라엘에게 은총을 베푸시고 구원하여 내셨음에도 그들이 주를 배반하자 하나님께서 대적자를 붙여서 심판하셨고, 그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마치 출애굽의 구속 사건을 떠 올리며 그런 하나님이 어디가셨냐? 고 힐문합니다 (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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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는 하나님의 성품과 행하심에 호소를 하며 자신들이 당하고 있는 상황을 살펴 보시고 옛적의 구원처럼 구원해 주실 것을 호소삽니다 (15-18).
사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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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는 주가 하늘을 가르고 강림 (내려 오심)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커튼이 있는 것처럼 커튼을 찢고 강림하시기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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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내려오시는 것은 죄인에게는 심판이며 두려운 일이지만 주를 믿는 의인들에겐 구원과 복된 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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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재림은 최후 심판의 날이며 최후 구원의 날입니다. 여러분은 주의 강림이 두려운 날이 될 것입니까? 기쁜 날이 될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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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성령이 오실 때 하늘을 뚫고 가르고 우리에게 임한 것이며, 주의 재림 역시 하늘의 휘장을 가르고 다시 오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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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절: 우리의 의 (선행, 열심) 는 더러운 옷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런 것들을 깨끗하게 될 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의로운 옷으로 입혀 줄 때 비로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여김 받스습니다.다 (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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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절: 인간은 구원에 있어 전적으로 무능합니다. 스스로 주의 이름을 부르며 주를 찾아 나서는 자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자비로 개입하지 않으시는 한 모든 인간은 심판을 받아 멸망당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아무 것도 안하시면 우리는 죄악으로 소멸될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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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악에서 구원받을 수 없는 비참한 상황에서 선지자는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근거로 용서를 간구합니다 (8-9). 그러면서 주의 백성들이 당하고 있는 심판의 참상을 아뢰며 구원을 절절히 호소하고 있습니다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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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시 기도할 때 이렇게 기도할 수 있겠습니다. “주는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토기장이시며, 우리는 주의 백성입니다”. 이 관계에 의지해서 우리의 필요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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