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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에스겔서는 어려운 성경입니다. 유대인들은 삼십 세가 되기 전까지는 에스겔을 읽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혹시 성경을 오해하거나 잘못 해석하는 것이 두려워서입니다. 이런 전제를 가지고 읽으시면 어려운 부분들을 만날 때마다 읽기를 지속하게 해 줄 것입니다.
위의 강의 영상을 시청하시면 책 전체의 개론과 큰 그림이 잡힐 것입니다. 꼭 시청하시기를 바랍니다. 시대적 상황, 언제 기록했는지, 누구를 대상으로 기록했는지 잘 설명되어 있어 제가 따로 언급하진 않겠습니다.

겔 1-4

에스겔도 이사야처럼 제사장 가문 출신인데 선지자로 부름받았습니다. 1장에서 에스겔은 하나님의 권능이 임함을 경험하고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내용입니다. 2장에서는 역시 예레미야처럼 선지자 소명의 장입니다. 그런데 선지자의 사명이 극한 직업처럼 아예 고난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패역한 백성들에게 가서 그들이 듣든지 안 듣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2:1-5, 7). 그걸 감당하게 하기 위해 여호와께서 에스겔에게 단단한 이마, 즉 담대한 마음을 주시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사명을 감당하라고 하십니다 (3:8-9, 6; 2:6).
에스겔의 사명은 말씀의 파수꾼입니다. 악인이든 의인이든 모두에게 말씀을 전해서 깨닫게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에 대한 반응에 따라 하나님이 심판하시겠지만 만약 에스겔이 말씀을 선포하지 않으면 그 책임을 확실히 묻겠다고 하십니다 (3:16-21).
설교자는 신자든 불신자든 모두에게 경고해야 하며 깨닫게 해서 악에서 돌이키고, 또 신자들이 악에 빠지지 않도록 말씀을 전하고 권면, 권고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저도 말씀 사역을 할 때 가장 힘든 것이 저의 전하는 말씀에 반응이 없을 때입니다. 말씀을 효과적으로 전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성경 말씀을 풀어서 선포했을 때 언제난 듣는 사람과 듣지 않는 사람 두 편으로 갈리는 것을 봅니다. 제가 할 소임은 듣든지 아니 듣든지 신실하게 말씀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가운데서도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의 참 제자가 된 사람은 소수였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보낸 선지자들에게 대했던 것처럼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의 말씀을 거부했고 분노했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주께서는 주님의 제자들을 부르시고 주의 복음을 증거하는 자들로 삼으시고 그들을 통해 땅끝까지 복음이 증거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들이 그 사역의 열매들입니다. 할렐루야!
에스겔 선지자의 사역은 하나님께서 너무하시리만큼 고통스러운 사역입니다. 자신의 몸 전체로 행위 계시를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이 포위될 것을 예언하기 위해 온 몸이 줄로 묶힌 채, 심판의 날만큼 390일을, 또 40일은 이쪽 저쪽으로 누워지내고, 먹기 힘든 음식들을 쪼개어 먹고 심지어 똥으로 만든 불에 구워서 먹어야 하는 역겨움도 감내하는 예언 활동이었습니다.
목회자의 사역이 이런 것이 본질이라면 누구도 쉽게 목사가 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각오하고 그 길을 가는 사람은 말씀 사역의 고통을 잘 감내할 것입니다. 목회자의 말씀 사역은 교회에서 설교하고 가르치는 현장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의 삶 전체가 메시지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경성하게 하고 두렵게 하는 말씀입니다.

겔 5

에스겔에게 다시 행위 계시로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심판 3종 세트인 칼, 기근, 전염병으로 모든 자를 멸하시겠다는 예언입니다. 개론에서 보셨겠지만, 이 때는 아직 유다가 멸망하지 않은 대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처럼 주전 605년에 1차 포로로 바벨론으로 끌려간 에스겔이 포로된 땅에서 그곳에 잡혀온 유다 백성들에게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5-7절에서 하나님의 심판의 이유를 주목해 봅니다. 오늘날 교회에 도전을 줍니다. 교회가 세상보다 악할 때 하나님은 심판하십니다. 교회는 세상 가운데 에워 쌓여 하나님의 다스림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가시적으로 보여 주는 곳입니다. 이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세상의 우상을 섬긴다면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상 가운데 부끄럽게 하며 그 영광과 명예를 실추시킬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그의 백성이 돌아오기를 오래참음으로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열심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완전히 이루어졌습니다 (13). 지금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피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을 마음으로 영접하고 주께로 돌아오라고…

겔 6

여호와의 말씀대로 이스라엘 (유다) 이 완전히 진멸됨을 당하므로, 그들이 말씀하신 하나님이 여호와 하나님인 줄 알게 됩니다. 이전 약속의 땅을 주실 때 가나안 족속들을 진멸한 것은 그들의 죄악이 관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젠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악이 차고 차고 충만해서 하나님께 죄를 범한 그들을 진멸하십니다. 이들의 죄가 이방인들보다 더 큼은 그들은 하나님의 구속받은 백성들이고 그들에겐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과 성경이 있었고, 하나님의 제사장, 선지자와 왕이 있었던 자들입니다.

겔 7

이스라엘 (유다)의 멸망이 임박했음에 대한 결고와 (1-13), 그들이 받게 될 벌 (14-27)에 대한 내용입니다. 밖에 있는 자는 칼에, 안에 있는 자는 기근과 전염병에 다 망하게 됩니다. 피할 수 없는 심판, 철저한 심판입니다 (15). 이런 심판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보시며 슬퍼하면서 성전이 완전히 파괴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예언대로 성전된 자신의 몸이 완전히 파괴되었지만, 무너진 성전이 재건되었듯이 다시 살아나셔서 새 언약의 새 성전이 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믿는 자가 성전이 되었습니다. 유대의 역사적으로는 A.D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주님의 예언대로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티투스 장관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그 이후 유대교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이 완전히 분리되었고, 기독교인들에겐 더 이상 예루살렘 성전 중심의 신앙을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유다) 여호와의 완전한 심판을 경험한 후 그의 말씀이 참되며, 그가 여호와 하나님인 줄 알게 됩니다. 개인의 죽음이든 종말의 심판을 당할 때 성경의 모든 말씀이 참이라는 것과 하나님이 하나님되심을 알게 된다면, 그때는 이미 늦은 때입니다. 비록 예수를 믿는 자,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일지라도 이런 말씀 앞에서 우리는 돌아보고 회개해야 합니다. 나의 마음과 나의 생각이 그래서 나의 삶이 하나님을 떠나 살고 있진 않은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세상 사람들처럼 그들이 붙잡으려는 것을 함께 쫓아 살고 있지 않은지…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주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신자가 매일 점검하고 돌아보며 주 안에 거해야 할 이유입니다.

겔 8

주의 영이 에스겔에게 임하여, 가장 거룩하신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백성이 만나는 장소에, 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전 안에서 은밀히 자행되는 우상 숭배와 악행의 모습을 에스겔에게 환상으로 보여 주시는 내용입니다.
사도 요한이 성령에 이끌리어 환상을 본 요한계시록과 대칭되는 장면입니다.
우상 숭배는 은밀한 곳에서 행합니다. 마음의 은밀한 곳을 주의하지 않으면 우상은 어느새 내 마음을 사로잡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에 만연한 총체적 불신, 반역과 패역함은 오늘날 한국 교회의 영적 현실과 닮아있지 않은지 돌아보며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속화의 물결로 부터 지켜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겔 9

하나님께서 이마에 표를 받은 자 외에는 예루살렘 성읍에 거하는 모든 사람을 죽이는 진노의 심판을 하시는 환상입니다. 이를 본 에스겔은 하나님께 진정 모두를 멸하시려는지 탄식하며 묻지만, 여호와께서는 반드시 멸하시리라는 의지를 분명히 하십니다 (9-11).
계 9장에서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때 재앙을 내린 장면과 대칭이 됩니다. 이마에 인침을 받은 자 외에는 다 황충에 의해 해함을 받습니다. 종말에 성도로 인침받은 자 외에는 모두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으로 멸망당하게 될 것입니다. 출애굽 시 문설주의 인방에 피를 바른 집의 사람들만 구원받았듯,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침받은 성도들만이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받게 될 것입니다.
죄인을 향해 진노하시고 반드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확인하게 됩니다. 우리가 죄에 대해 얼마나 심각하게 대해야 하는지를 계속해서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의 성소에서부터 먼저 시작된다는 것은 큰 경각심을 일으킵니다 (6).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교회에서 시작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상의 하나님의 구원의 방주로서 교회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존재해야 함을 깊이 깨닫습니다.

겔 10

계속해서 유다를 심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예언에 대한 환상입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에 이르러 성전에 가득하였다가 (4) 성전 문지방을 떠납니다 (18). 하나님이 임재하지 않는 성전은 그저 돌 덩이일 뿐입니다. 그 자체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신약 시대는 돌로 된 성전대신 성도들로 이루어진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진 교회,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되시지 않는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가 떠난 돌무더기일 뿐입니다.
매 주일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사모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여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함께 주를 만나는 예배 되기를 간구합니다.

겔 11

주의 영이 계속해서 이스라엘 (유다)이 심판을 받는 모습을 다른 환상으로 에스겔에게 보여 줍니다. 예루살렘 성읍의 악한 자들이 그들이 행한 대로 다 죽임을 당하고 멸망하자, 선지자는 하나님이 남은 자까지도 다 멸하실까봐 탄원합니다 (13).
하나님은 심판의 메시지의 한 가운데 진정한 회복의 메시지를 주십니다 (14-21). 그 가운데 가장 큰 위로와 주목해야 할 말씀을 19-20절입니다.
에스겔 11:19-20 19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20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렘 31:33절과 동일한 약속입니다.
예레미야 31:31,33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비록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밭아 온 이방에 흩어짐을 당하고 지금은 바벨론의 포로로 살아가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 모아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셔서 거기서 다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 나라를 살게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그 땅에 신실한 자들은 이 약속을 믿고 고난 중에서도 소망하며 이 날을 대망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 속에 부분적으로 이루어 지긴 했지만 동일한 날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계속 기다렸습니다. 이 약속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사역을 통해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선포되고 열방 가운데 교회가 세워지는 일을 통해 성취되었고 성취되어 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 약속이 이미 성취된 신약의 시대를 살아가는 주의 백성들이며, 이 모든 약속을 영적으로 이미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약속이 영적일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그대로 성취될 주의 재림의 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하루를 살아갑니다.

겔 12

여호와의 말씀대로 에스겔은 또 다시 실물 행위 계시를 통해 이스라엘 (유다)과 예루살렘이 멸망하여 포로로 끌려 갈 것임을 이미 바벨론에 끌려간 유다 포로들에게 전하는 내용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반응은 그런 예언(계시) 은 먼 미래에 일이라고 말하며 거짓 평안 가운데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3:4,9 4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지금 시대의 사람은 세상이 영원할 것처럼 믿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복음 가운데 있는 심판의 메시지를 거부하죠. 많은 신자들 역시 주의 재림이 당장에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실존적 현세주의자) 살아가는 듯 합니다. 우리들도 그 속에 속하지 않은지 깊이 돌아 보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던 이들은 그들의 세대에 예언의 성취를 목도하였습니다 (28)! 주의 재림이든 개인의 종말이든 더디지 않고 속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겔 13

여호와께서 에스겔에거 거짓을 예언하는 거짓 선지자들에게 심판을 경고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보내지 않은 자들이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은 것을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거짓 권위를 내세우며 자기들 마음대로 예언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의 예언은 그래서 허탄한 것이며, 그들은 회칠한 담입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 대해 저주의 말을 하셨던 것과 같습니다.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등 예수님 당시 유대 지도자들이 거짓 선지자였고, 회칠한 무덤이었습니다.
오늘날 거짓 교사, 거짓 목사들이 이와 동일합니다. 기독교를 돈 벌이의 수단으로 삼고 자기의 배를 채우는 이리와 같은 자들입니다. 교회를 비지니스로 만들어 버립니다.
자기 마음대로 성경과 무관하게 가르치고 설교하는 자들이며, 하나님이 보내지 않은 자들이고 보지 않은 것을 보았다고 거짓 간증하는 자들입니다. 결코 평안하지 않은 데 복받을 것이라.. 안전할 것이라… 천국에 갈 것이라… 거짓된 회심과 거짓된 평안을 설교하고 가르칩니다. 또한 진정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본문에 나온 것처럼 돌이켜서 구원받아야 할 악인들을 죽이고, 의인들조차 미혹하여 죽게 만드는 “영혼 사냥꾼” 들입니다.
이스라엘에게서나 예수님의 때나 초대 교회나 지금 교회 안에서나 언제나 거짓 선지자, 선생, 목회자들은 있어 왔습니다. 바른 말씀을 통해 바른 교리를 가르치고 배우고 그 가운데 살아가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하나님의 교회의 본질적 사명과 존재의 모습입니다.

겔 14

계속되는 예루살렘 심판과 멸망의 예고입니다. 본 장에서는 그 누구도 (노아 다니엘과 욥) 대신해서 이들을 건질 수 없으며 자기 공의로 자기만 구원받을 것이라 말하십니다. 결국 하나님께 의로운 자는 구원을, 죄인은 자기의 죄대로 멸망당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의로움으로 죄인을 대신해 죽으심으로 죄인을 의롭게 하셨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는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받아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당대의 의인 노아 다니엘 욥이 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7절: 자기를 위해 하나님께 묻기 위해 선지자에게 가는 자를 하나님께서 멸할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이런 행위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기 중심적 신앙, 기복신앙” 의 전형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신앙을 미워하고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알 때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는 동기를 얼마나 깊이 살펴야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이런 동기로 복을 구하거나 기도해 달라고 목사에게 왔을 때, 목사가 거기에 동의하고 복을 위해 기도할 경우 하나님께서는 동일하게 그를 주의 백성 공동체에서 끊어 버리겠다고 하십니다 (9).

겔 15

본 장에서는 포도 나무 가지와 불에 그을린 포도 나무 가지는 아무 쓸모 없어 버려져야 할 것임을 비유로 말씀하며 하나님이 심판하실 예루살렘이 이 포도나무 같이 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대적하시는 것으로 묘사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불법, 범법을 얼마나 심각하게 대하시는 지를 깨닫게 됩니다.
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법에 불순종하는 자가 받을 심판의 두려움을 통해 자꾸만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나아가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 피하기 위해 달려 가게 합니다. 이것이 계속 되는 하나님의 심판의 예고의 역할이 분명합니다.

겔 16

예루살렘의 우상 숭배와 다른 나라들을 의지하던 죄를 음행에 비유하며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패륜적인 범죄를 저질렀는지를 낱낱이 고발하는 내용입니다. 그들의 음행의 표현들은 차마 입에 담기 조차 어려울 만큼 음란의 음란의 음란을 더한 행위였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음녀 중에 가장 음란한 여인이 유다 예루살렘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음란함에 비하면 죄악으로 인해 멸망당한 소돔과 사마리아 (북이스라엘)는 오히려 순결하다고 말해야 할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과 맺었던 옛 언약을 기억하고 그들을 회복하시고 다시는 깨어지지 않는 영원한 언약을 세우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60-63).

겔 17

본 장은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여호야긴 왕을 끌고 가고 꼭두가시 왕으로 시드기야를 세웠지만, 그가 배반하고 애굽을 의지하고 도움을 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애굽 역시 바벨론에게 패함으로 유다를 돕지 못하였고 유다와 시드기야 왕을 바벨론의 심판을 당해 멸망당하고 형벌을 받습니다. 이러한 역사를 나무가지와 나무를 들어 비유로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전한 메시지와 동일하지만, 예레미야는 본국에서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하였고, 에스겔은 포로로 잡혀가서 절망 중에 있는 바벨론 포로가 된 유다 백성들을 향해 외치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겔 18

핵심은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 (4, 20) 입니다. 그 누구도 대신 다른 사람의 영혼을 위해 죽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죄에서 돌이키고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의인으로 인정하시고 살려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1-9).
하나님은 오래참으시는 분이시고 자비가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멸망당할 자로 경고를 받았어도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를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자신이 행한대로 보응을 받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10-13).
악을 행하는 자는 그 악으로 인해 죽을 것이며 (10-13), 선을 행하는 자는 자신의 선으로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4-17).
과거에 의인, 과거의 악인이었던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의인이라도 악을 행하면 심판을 받고, 악인이라도 의를 행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지금, 현재 의인이냐 악인이냐가 중요합니다.
현재의 신앙이 중요합니다. 한 때 신앙이 뜨거웠다. 한 때 리더였다. 한 때 잘 믿었다…를 하나님께서는 쳐 주지 않으십니다. 신앙은 항상 현재로 판단받습니다.
결론은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30). 이겁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죄인을 그가 행한대로 심판하시겠다는 경고는 회개를 통해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입니다.
문제는 주가 스스로 의를 행할 수 있으며 누가 스스로 죄악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이킬 수 있습니까? 이 딜레마에 대한 해결책이 하나님 자신이 인간이 되어 완전한 순종으로 하나님의 모든 율법을 준수하시고, 우리의 영혼을 위해 대신 죽으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분의 의를 전가받아 우리도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지 않고 구원받는 것입니다.
To do ⇒ 생명
Not to do ⇒ 사망
의로워서 정의와 공의를 행함
우상 숭배
빚진 자의 저당을 돌려 줌 (경제 정의)
간음 (이웃 아내와)
주린 자에게 음식물을 줌 (구제)
성적 부정
벗은 자에게 옷을 줌 (구제)
학대와 강탈
진실한 판단 (사법 정의)
대부업, 이자 받기 (당시 유다 공동체의 상황에서)
율법 준수
손으로 지은 죄
진실히 행함

겔 19

유다의 두 왕인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긴을 젊은 사자에 비유하며 그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폭정을 하다가 심판을 당할 것임을 경고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시대적 배경은 유다 멸망 직적 주전 592년경입니다.
비유로 되어 있어 이해하기가 까다로운데, 암사자는 이스라엘, 새끼 사자 하나는 요시아의 아들 여호와하스 왕을 가리킵니다. 19:4 그들을 애굽 땅으로 끌고 간것은 주전 609년 애굽의 바로느고가 여호아하스를 애굽에 잡아간 사건을 말합니다.
젊은 사자 (19:5)는 야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기능 왕을 말하는데, “끌고 바벨론 왕에게 이르렀다” 는 것은 주전 597년에 여호야긴 왕이 폐위되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사건을 말합니다.
이 예언의 내용을 “애가” (슬픈노래)로 지어 부르라고 주신 것입니다.

겔 20

1절은 본 장의 내용의 시기를 알려 줍니다. B.C 591년 8월입니다.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여호와의 뜻을 물으려고 선지자에게 나아오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목숨을 걸고 맹세하시며 안 듣겠다고 하십니다 (3, 32). 그리고 그들의 가증한 죄악들을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에게 이런 말씀을 듣는 당사자들은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악된 삶과 마음으로 인해 우리의 기도와 간구를 하나님의 목숨을 걸고 맹세하시며 결단코 듣지 않겠다고 하신다면 이것보다 더 큰 저주와 심판이 어디있겠습니까? 이스라엘을 거울 삼아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는 백성이 되어야 겠습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을 남겨 두신 이유는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 가운데 더럽혀지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9, 22). 아무리 교회가 타락하고 부패하고 무너져도 소망이 있음은 하나님은 결코 자기의 이름이 더럽혀 지지 않기 위해 교회를 남겨 두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남겨진 교회, 남겨진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늘 머물기를 소원합니다.
10- 26절 부분에서는 그들의 종합 선물 셋트 같은 총제적인 죄악 가운데 안식일을 지키지 않은 것을 집중 포화하십니다. 안식일을 주신 것은 이방나라와 하나님 나라 백성을 구별하는 표징으로 주셨습니다. 그들이 안식일을 무시하고 준수하지 않을 때 구별이 (거룩이) 사라집니다.
오늘날 주일 예배와 주일을 온전히 지키는 것은 아 옛날이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구약의 안식일의 제사적 제의적 규정들은 다 폐하여 졌어도 안식일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안식일이 주일로 바껴 그리스도인들은 주일을 함께 지키는 것입니다. 만약 신자가 주일을 구별해서 지키지 않는다면, 세상과 구별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주일이 없는 신자는 하나님도 없는 자리로 나아가게 되어 있고, 주일이 약해진 교회는 세상같은 교회가 되거나 하나님의 교회로 존재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주일을 신실하게 지키는 것이 생존의 문제이기에 교회의 성도는 주일에 신실할 것에 전념해야 합니다.
33-49절은 주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인데 중간 부분인 40-44절에 놀라운 회복의 약속을 하십니다. 그 내용은 심판 가운데 소망을 주는 말습입니다. 이 약속은 잘 아시겠지만 구약의 이스라엘에게서 성취되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 구원으로 이 구절들을 보면 아하! 라고 감탄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모든 것을 이루셨습니다. 할렐루야!

겔 21

바벨론의 칼 (침략) 에 의해 당할 유다와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예언입니다. 계속해서 심판의 메시지가 나오니 읽는 우리의 마음도 무겁도 힘이 듭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진멸입니다. 죄인을 향한 진노를 불처럼 쏟으시는 심판입니다. 죄인에게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이 보다 더 잘 보여주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알지 못하면 복음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 앞에 죄인이 우리에게 쏟아져야 할 하나님의 진노를 당신의 아들에게 남김없이 부으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에서 구원받았다는 것이 참으로 큰 위안이며 감사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죄를 범합니다. 그러나 이젠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받은 죄인이기에 죄사함의 복을 누리며 주 안에서 샬롬입니다!! 망하게 될 심판의 예언입니다.

겔 22

여호와께서 에스겔에게 유다와 예루살렘을 심판하기 위해 그들의 가증한 일, 즉 죄악이 무엇인지를 그들에게 알리라고 하시면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토 나온다” 라는 말이 딱 들어맞을만큼 하나님이 알게하시는 이들의 죄악들은 너무나 악해서 토가 나올 지경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의 이런 죄악들을 눈으로 보시고 귀로 들으시면서 얼마나 견디기 힘드셨겠습니까? 그들의 죄악상은 부모를 공경하지 않았고 (천륜을 저버리), 사회 정의가 무너녔고, 억압하고 착취하는 사회였으며, 종교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했습니다. 폭력과 살인과 거짓증언이 난무했으며 인간이라면 할 수 없는 성적 타락이 만연한 사회였습니다.
신앙의 타락은 윤리와 도억과 사회 정의의 타락으로 이어집니다. 그로 인해 그 사회는 사실상 하나님이 심판하지 않아도 사는 자들에 지옥과 같은 곳이 되며 그로 인해 신음하고 탄식하는 곳이 됩니다.
하나님 보시에게 우리의 죄도 “토 나올만큼” 악하고 더러운 것이 아닐까요?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아직도 ‘나는 하나님 앞에서 그 정도로 악하진 않아, 그 정도로 죄를 짓지 않았어’ 라는 자기 의에 빠져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죄 용서가 무한한 은혜와 사랑이라는 것이 확실해 지는 지점입니다.

겔 23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애굽과 앗수르를 의지하며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하던 죄악을 간음한 오홀라(사마리아)와 오홀리바(예루살렘)에 비유하여 그들의 죄악상을 심판의 근거로 제시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받을 심판에 대한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들을 구원하시고 사랑하시며 그들을 돌보신 아버지와 신랑되시는 하나님을 버리고 애굽과 앗수르와 바벨론을 섬긴 것은 그들이 더 강하고 아름답고 지혜롭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외적인 것을 쫓아 간 것입니다.
세상의 부와 힘과 지혜와 쾌락을 추구하며 달려가는 인생이 우상 숭배이며 하나님께 대해 간음한 여인 오홀리바와 오홀라가 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쫓아 사는 것이 패망의 길입니다.

겔 24

오홉째 해 열째 달 열째 날은 주전 588년이나 587년 1월 입니다 (1). 주전 586년에 유다와 예루살렘이 완전히 멸망했으니 끝이 가까운 때입니다.
예루살렘의 죄악은 너무 깊고 커서 아무리 태우고, 녹여도 벗겨지지 않는 녹슨 가마입니다 (2-14).
예루살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예언을 실물로 계시하십니다. 에스겔에게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유다와 예루살렘이 당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에스겔의 아내가 죽게 되고 하나님 말씀대로 에스겔은 순종합니다. 너무 가슴 아픈 일이고 왜 하나님은 선지자의 사역을 이렇게까지 감당하게 하실까는 탄식까지 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죄악을 드러내고 경고하는 말씀 사역자의 고생과 고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선포한다는 것은 너무 많은 고난을 동반한 사역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전 삶이 에스겔 선지자처럼 실물 게시였습니다. 하늘 영광 다 버리시고 인간이 되어 하나님이 죽으셨습니다. 그의 죽음과 부활이 죄악된 세상을 향한 선포한 심판과 구원의 메시지입니다.

겔 25

25장부터 32장까지는 이방 나라들이 당한 심판의 예고입니다.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처럼 뒷부분에 이방에 대한 심판을 기록합니다.
암몬, 모압, 에돔과 블레셋이 받을 심판입니다. 이들이 심판당하는 이유는 이스라엘과 유다를 대적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복의 약속 중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축복을 받으리라” 말씀대로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 이스라엘 또한 하나님의 복을 버리고 그들조차 버림받았지만 말입니다. 아브라함의 참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저주하는 자는 영원한 심판과 형벌의 저주를 당할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축복하는 자는 (복되신 하나님으로 믿는 자는) 영원한 구원의 복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를 믿게 하신 것이 감사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겔 26:1 - 28:19

주전 587~586년경입니다. 유다의 멸망이 더욱 임박한 때입니다.
두로가 받을 심판에 대한 내용입니다. 3장에 걸친 긴 분량을 할당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두로가 심판을 받는 이유, 그들의 경제적 번영과 하나님을 향한 교만이 모든 이방나라들의 공통적 특징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두로의 번영과 그들 자신이 신으로 여기며 무신론적 세상 나라를 영위하는 모습은 지금 시대의 나라와 세상 사람들의 전형적인 특징과 결을 같이 합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이스라엘 만의 교회의 주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세상 역사를 주관하시며 모든 민족과 나라들의 흥망성쇠를 자신의 구속사를 중심으로 이끌어 가시는 전능자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자들은 종말에 두로가 받은 심판을 당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지금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며 살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또한 세상 사람들의 성공, 부와 명예와 힘을 부러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가장 안전하며 영원히 복된 삶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의 크심을 알 때, 세상이 아무리 커 보여도 우리가 더 큼을 자각하고 주만 섬기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겔 28:20-26

20-24절 부분은 시돈에 대한 심판을 말하고 25-26절에서는 이방나라들의 멸망 후에 흩으셨던 이스라엘 족속을 다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한 땅으로 귀환하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역시 이 회복에 대한 부분적 성취는 70년 이후 바사와 고레스왕 원년에 이루어지나 미미하고 보잘 것 없는 성취였습니다. 완전한 성취를 대망하게 하였고,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에서 완성되고 영광스럽게 성취됩니다.

겔 29-32

애굽이 당할 심판의 예언입니다 주전 587년~ 585년사이에 여호와께 받은 예언의 말씀인데 29:17-21에는 주전 571년 4월에 받은 말씀을 삽입하고 있습니다.
두로가 받을 심판의 내용보다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합니다. 그만큼 철저한 심판을 세세히 묘사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의지했던 강국 애굽은 갈대지팡이여서 도리어 그를 의지하던 자가 상하고 넘어질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들 역시 여호와 앞에서 자기의 힘과 부를 과시하며 교만하였고 악하였습니다. 악한 자를 들어 (바벨론) 악한 자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언대로 애굽은 미약하고 지극히 미약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지금의 이집트를 보면 이때의 애굽과는 비교할 수 없이 초라한 힘없는 나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언제나 교만이 문제입니다. 성공하고 건강하고 잘 되면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자신이 잘해서 그런 걸로 압니다. 하나님께 헌신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 성공에 취해 하나님과 교회에서 멀어져 살아갑니다. 이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공을 다 누리며 평안하게 죽지만, 하나님없이 하나님과 멀어져 살다가 마감한 생은 결코 복이 아니라 두려움입니다. 우리는 오늘 개인의 종말을 맞이할 지라도 두려워하지 않도록 항상 하나님과 최선의 관계를 현재적으로 가지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32:17-32절은 죽은 자들의 세계를 어느 정도 엿보게 합니다.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사람들을 두렵게 하던 자” 가 거의 모든 절에 반복됩니다. 아무리 한 때 세상을 호령하고 세상 사람들의 두려움을 주고, 설령 그것이 부러움, 존경일지라도… 하나님과 무관한 자들은 스올에서 “할례받지 못한 자” (이스라엘 공동체가 아닌자, 참된 교회의 지체가 아닌 자, 불신자) 들과 함께 멸망당할 것입니다.
이 모든 장에서 하나님이야 말로 역사의 주인이시며 하나님의 뜻대로 주관하시는 역사의 주권자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세계와 국제 정세를 바라보고 이해할 때 이 관점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역사의 뒤에서 주관하시는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시며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이란 전쟁과 연관된 미국, 이란, 이스라엘, 러시아, 중국등등 세계 정세는 이 관점에서 보면 선명해 집니다. 지난 역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천년의 단위로 지나 온 역사를 보면 하나님이 주관하신 역사였고, 세상의 역사는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세상의 역사는 하나님의 구속사이며, 그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이 <교회> 가 있습니다!

겔 33

에스겔을 이스라엘의 파순꾼으로 세우시고 그가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을 때 그를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1-20). 이것이 선지자의 본무입니다. 듣든지 안듣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선포하는 것! 들은 자는 그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구원을 받기도 심판을 받기도 하지만 선지자가 그 책임을 다하지 않았을 때, 악인들이 심판받는 것에 대한 책임을 선지자에게 물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선지자의 역할과 책임이 얼마나 중한 것이지 두렵게 하는 말씀입니다. 율법없는 은혜, 십자가 없는 영광, 죽음 없는 부활의 메시지에 편향된 오늘날 목사와 교인들의 선호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알게 합니다.
21절부터는 예루살렘 성이 함락된지 5개월째 될 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이때는 유다를 말함) 을 완전히 심판하실 것을 다시 천명하십니다. 그들이 당한 일 때문에 에스겔 선지자 앞에 모여 하나님 사랑한다고 입술로 고백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자기들의 이익을 좇는 거짓된 자들이었습니다. 불신자들과 다름없습니다.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자라고 지적하십니다. 예수께서도 산상수훈에서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의 구원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참된 믿음은 말씀을 듣기만 하지 않습니다. 듣고 행하며 믿음대로 마음과 삶이 움직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열매 (행위)를 맺는 삶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겔 34

본 장은 이스라엘의 멸망의 원인으로 거짓 목자를 지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양 떼에, 그들의 지도자들을 목자에 비유하며 거짓 목자들의 죄악상을 드러냅니다. 이스라엘은 목자 없는 양, 즉 참된 선지자와 왕과 제사장이 없는 양 떼였으니 그 끝은 멸망입니다. 이리와 늑대들에게 다 잡혀 먹고 죽임당할 뿐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의 상황은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마주했던 유대인들이나 예수님이 상대했던 유대인들은 놀랄만치 복사판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교회의 상황이 이 시대의 복사판이어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목회자들과 교회의 지도자들이 자기의 배를 채우며 하나님의 진리로 양떼를 목양하지 않고 교인들을 흩어지게 하고 영혼을 갈하게 하며 거짓 교사들에 잡아 먹히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기에 회복과 소망의 메시지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실 한 목자를 통해 하나님의 양 떼인 자기 백성들을 거짓 목자로부터 구원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 목자는 하나님의 종 다윗입니다. 다윗의 후손이란말입니다. 이 목자는 하나님의 백성의 왕이 될 것이라 예언합니다 (23-24). 그리고 그 목자가 오셔셔 회복할 이스라엘 땅은 낙우너입니다 (25-31). 당시 유다에서 이 메시지를 믿은 경건한 자들은 이 날을 간절히 소망하며 위로를 받고 인내하였을 겁니다.
이 약속은 메시아를 예언하는 직접적인 구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성취될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말씀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합니다. 지금 교회 시대에 사는 우리들에게 이 약속은 이미 2천년전 성취되었고 지금 하나님이 세우신 참된 목자의 다스림과 가르침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미 약속이 성취된 때를 살아가는 우리는 얼마나 복된 존재들입니까!

겔 35

다시 삽입처럼 에돔이 당할 심판을 말하는데, 그 이유가 그들이 이스라엘의 멸망을 기뻐하였고 저주하였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약속한 내용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되어 아브라함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참 이스라엘입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영원한 복과 저주가 결정됩니다. 이것이 진정 사실이라는 것을 아는 자는 예수를 영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영원한 진리를 알게하시고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겔 36

성경의 모든 장들이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다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구원과 성경을 이해하는 데 특별히 더 중요한 장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신학적으로도 매우 깊이가 있고 풍성한 내용들을 담고 있는 장들이 있습니다. 에스겔 36장이 바로 그런 장들 중에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구속받은 백성인 이스라엘이지만, 끊임없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불순종하며 우상을 숭배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그럴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회복의 메시지는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거기에 대한 답이 36장입니다. 그들의 실패의 근본 원인이 마음 (heart)과 영을 새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들 안에 거함으로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을 지키게 하십니다. 결국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과 은혜로 전적으로 부패하고 전적으로 무능한 이스라엘을 가능한 존재로 만드셔서 다시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이 언약 관계는 다시 깨어지지 않는 영원한 언약이 됩니다. 이 모든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역과 이를 심령 (영혼)에 적용하시는 성령의 사역으로 성취됩니다.
25절은 성령의 죄 씻음으로 거룩하게 되고 정결하게 되는 것을 말하며, 이는 요 3:5절에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으로 설명됩니다. 거듭남을 중생이라 (Born again, regeneration) 이라 하는데 바로 이것이 “성령세례”를 말합니다. 신자가 성령으로 거듭날 때 한번 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그 이후는 충만입니다. 성령이 거하는 자는 하나님의 법이 밖이 아니라 자신 안에 있기에 기꺼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말씀에 순종하게 됩니다.
중생의 결과는 풍성함이며 (30), 죄를 미워하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31). 그래서 많은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회개와 믿음을 중생 뒤에 (논리적으로) 놓습니다.
<구약 성경의 예언과 약속에 대한 해석의 렌즈, 32-38>
회복된 이스라엘의 모습은 에덴동산과 같지만 더 영광스러운 곳입니다. 이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묘사입니다. 여기 나오는 약속의 말씀은 복합 성취입니다.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에서 모두 완성됩니다. 구약의 예언은 늘 이처럼 이중 성취 또는 복합 성취라는 렌즈를 가지고 바라보면 구약이 해석됩니다. 1차적으로는 당시의 상황에서 가까운 미래에 성취되나 부분 성취이고, 예수님의 초림으로 완전히 성취되나 (영적으로, 실제적 완성은 종말에) 재림시 완성됩니다.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을 패키지로 하나로 다룬다면 구약의 모든 예언과 약속은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에 의해 완전히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패역한 이스라엘을 이렇게 구원하시는 이유는 하나님 자신의 거룩한 이름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16-31). 하나님의 이름과 이스라엘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패망한 모습, 그들의 죄악된 모습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과 명예와 영광을 훼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위해 자기 백성을 고치셔서 거룩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이름을 회복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과 교회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 가운데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도리어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하고 세상의 지탄을 받을 때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이 더럽혀집니다. 성도의 삶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이름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교회로서 세상에서 삶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알 때 세상에서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며 살아가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추락하는 교회의 영광을 다시 회복시킬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위해서 입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의 첫 청원도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받게 하옵소서” 인 이유입니다. 우리의 최우선의 기도는 우리의 소원은 “하나님의 이름이 교회를 통해 세상 가운데서 거룩히 여김받게 하는 것” 이어야 합니다. 아멘

겔 37

에스겔서 전체 장 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장입니다. 내용이 길더라도 주의 깊게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 환상입니다. 유명한 마른 뼈 환상과 막대기 환상이 나옵니다. 마른뼈 환상에 대해서는 교회를 오래 다니신 분들은 한 번쯤은 설교도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마른 뼈가 다시 살아나는 환상은 완전히 멸망되어 바벨론의 마른뼈 골짜기의 뼈들처럼 소망 제로인 이스라엘이 회복되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다시 한 이스라엘이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대언의 말씀과 생명을 주시는 성령과 이스라엘의 한 목자와 다윗 왕 (후손)에 의해서 입니다.
이렇게 회복된 이스라엘의 모습은 영원한 언약의 성취입니다. 영원토록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사이의 언약이 한 목자이며 다윗 왕인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24-28절의 회복된 이스라엘의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사역으로 인해 창조된 하나님의 교회에서 실현되며 궁극적으로는 종말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서 누리게 됩니다.
27절의 예언이 성전을 중심으로 어떻게 성취되어 가는지를 추적해 보면 먼저 바벨론 포로 귀환으로 성전을 재건함으로 (제2성전) 부분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예수님이 새 성전이 되십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며 교회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과 우리가 그분의 백성됨을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으로 누립니다. 그리고 종말에 새 예루살렘성에는 성전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어린 양 그리스도가 성전되시기 때문입니다. 회복되고 완성된 하나님 나라인 새 하늘과 새 땅은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인 곳입니다!!!
본 장은 신약의 교회를 잘 설명해 주는 에베소서 4장과 병행을 이루는 구절이 많습니다. 마른 뼈가 소리가 나고 움지기어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는 장면은 (7).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으로 창조된 신약의 교회가 온 마디가 서로 연락하고 상합하며 한 몸을 이루는 것 (엡 4:16) 을 바라보게 합니다.
마른뼈가 살아나는 과정을 거듭나는 과정, 즉 중생의 과정을 설명할 때 사용하기도 합니다. 말씀 선포시 영적으로 죽은 자가 생기 (성령)가 들어가 살아납니다.
중생의 과정을 요약하면 말씀 선포 → 복음 수령 → 성령의 내주 → 영생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이런 내용을 통해 하나님의 전능하심, 자비와 긍휼, 구원의 원대한 지혜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과의 관계, 교회의 영광과 비전에 대해 풍성하게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피와 성령으로 세워진 교회가 있음을 알 때 우리의 삶의 중심이 결국 교회 중심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교회와 분리된 개인과 가정의 삶은 하나님의 원대한 구원의 계획과 성취와 역사의 궤도에서 벗어나 살아가는 것입니다.

겔 38-39

하나님과 거의 백성을 대적하는 세력인 곡이 회복된 이스라엘을 침략하지만 이스라엘이 곡을 물리치고 최후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을 예언합니다. 고긍 메섹과 두발을 통치하는 마곡의 왕으로 바사, 구스, 붓, 고멜, 도갈마 족속 총 일곱 족속의 총 사령관입니다. 곡이란 이스라엘 역사에 등장하는 수 많은 대적을 대표하는 상징입니다. 곡의 침략이 이스라엘의 멸망이 아니라 도리어 이스라엘에 의해 곡이 멸망당할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 전쟁은 온 세상의 대적자들이 연합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최후 공격을 보여 주는데 이는 요한계시록 20장 8절에도 등장합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대적자와 하나님의 백성의 전투는 지금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 하나님의 교회와 사탄이 끊임없이 벌이는 영적 전투를 보여 주는 것이며, 결국 최후 승리는 교회에게 있음을 말해 줍니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며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에게 38-39장은 주님 오실 때까지 전투하는 지상의 교회에게 지속적으로 용기와 힘을 불어 넣어 주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교회가 세상과 사탄에 의해 소멸해 가는 듯 보일지라도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할 것입니다.

겔 40

40-48장의 새 성전의 환상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성될 새로운 질서를 보여줍니다. 성경 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난해 구절) 구절 중에 베스트 중 한 곳입니다.
이 환상이 임한 때는 주전 573년 1월입니다. 이미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이 전소되고 무너져 황폐하게 된 때입니다.
분명한 건 40장에서는 멸망이후 하나님이 회복할 새 성읍과 성전에 대한 비전이므로 당시 이스라엘에게 큰 소망을 주었을 것입니다.
새 성전의 모습은 새 성전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될 교회와 궁극적으로 종말에 완성될 예루살렘 성의 프리뷰입니다.
38-39에서 곡과 마곡과의 전쟁에서 완전히 승리한 이후 새 성전에서 떠났던 하나님의 영광이 (8-11장에서) 돌아와 자기 백성의 죄를 정결하게 하시고 영원토록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회복에 대한 내용이 40-48장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반드시 최후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 소망의 확신으로 미래를 평안 가운데 바라보며 환난 때에 인내와 힘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겔 40-48

이 부분의 내용을 아래에 요약하였습니다.
40:1-48:35절 부분은 에스겔의 마지막 부분으로 회복의 환상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자행된 가증한 이들로 인해 여호와가 성전과 예루살렘을 떠나는 8-11장의 환상과 대칭이 되는 환상입니다.
40-42장은 에스겔이 새 성전을 둘러보며 43:1-5절에서 여호와의 영광이 다시 성전에 돌아오는 것으로 절정에 이릅니다.
여호와의 음성은 에스겔에게 이스라엘의 새로워진 예배에 대한 규정들을 가르쳐 줍니다 (43:6-46:24).
에스겔의 여행이 다시 시작될 때 성전 문지방에서 강이 흘러나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모습을 에스겔은 목격합니다 (47:1-12).
그리고 에스겔서는 지파들 사이에 새 땅의 분배와 경계로 마무리 됩니다 (47:13-48:35).
에스겔이 본 새 성과 성전의 여행의 이해를 위해 아래 이미지의 알파벳 표시 A부터 K는 성전 안 건물의 위치를 나타내고, 번호는 에스겔이 본 환상을 따라 성전을 여행한 경로입니다. 죽 따라가면 41장부터 43장까지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겔 47

<에스겔의 새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
1-12절은 새 성전 문지방에서 물이 흘러나와 점점 불어나 건널 수 없는 강이 되는 환상입니다. 이 물은 흐르는 곳마다 생명이 살아납니다. 바다가 생물로 가득하고 강 좌우의 나무는 끊임 없이 새 열매가 맺힙니다. 먹거리의 무한 생산과 무한 공급이며 그 잎사귀는 치료 약입니다. 병들지도 않겠지만, 병들어도 치료됩니다. 생명을 주는 물을 성경 전체를 관통하며 추적해 보았습니다. 너무 많지만 대표적인 흐름으로.
에덴동산에는 4개의 강이 흐르며 동산을 적시고 생명으로 충만하게 하였습니다. 에덴동산은 하나님 나라의 원형이며 거룩한 성소 (santuary) 였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 (아담과 하와) 과 함께 거하는 처소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때 모세가 반석을 쳐서 터져 나온 물이 그들을 살게 하였습니다.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형하는 것이며, 반석에서 터져 나온 물은 예수에게서 나온 성령을 모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를 믿는 자가 받게 될 성령을 가리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올 것”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7:38). 이 성령은 새 성전되신 예수님에게서 흘러나오는 성령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이후 50일째 되는 날 (오순절)에 성령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부어지는 성령 강림 사건에 임하였고, 그 이후 예수 믿는 자들에게 부어져서 영생을 가지 새 생명으로 거듭 나게 하시고 성도 각 자에 내주하시고 교회 가운데 임재하십니다 (임마누엘).
에스겔의 강의 환상은 요한계시록의 새 하늘과 새 땅의 묘사입니다. 계 22:1-2절이 이 환상의 차용입니다. 그때에는 하나님과 그의 어린 양 에수 그리스도의 보좌에서 생명수 강이 흘러 나와 강 좌우의 생명 나무에 열매를 맺게 하고 그 잎사귀는 만국을 치료합니다. 그곳은 더 이상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 가운데 영원토록 거할 하나님의 처소, 하나님 나라입니다.